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감동이 없습니다. 무책임한 시대입니다. 정치인도 경제인도, 그리고 지식인도 모두가 책임을 회피합니다.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무관심으로 대처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아무런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모두가 나만을 생각합니다. 내 유익, 내 편안함, 내 행복에만 집착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느님의 목적이 아닌 세상적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 때문에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걸만한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때로는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 피곤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준비하고 그 사명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생의 방향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사명을 생각하십시오. 하느님이 여러분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인생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길을 가다가 방향을 잃으면, 정북향을 바라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행동하면 방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길을 잃으면 사명을 찾으십시오. 사명감을 회복하고 다시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시고, 그리고 그 사명에 인생을 거십시오. 진정한 성공과 행복은 사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목적도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무엇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미래, 가정의 미래, 교회의 미래, 세상의 미래, 하느님의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더 이상 방황하지 말고 하느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달려갑시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먼저 구합시다. 주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물질과 신앙에 관련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십시오. 청지기의 자세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물질을 사용하십시오. 둘째,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즘은 경제가 나무나 어려워지고 있어서 걱정이 많으실 텐데 모든 걱정을 주님에게 맡기십시오. 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 들의 꽃 한송이도 입히시는 하느님이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셋째,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십시오. 무엇보다 자신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목숨을 걸만한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사십시오. 사명을 위해 준비하고 사명을 위해 공부하고 사명을 위해 돈을 벌고 사명에 모든 것을 거시기 바랍니다.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판관시대와 엘리야를 비롯한 수많은 예언자들이 우상숭배와 싸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다보면 이스라엘에서 우상숭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느님 말씀을 어겨서, 가장 대표적으로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우상 신을 섬겨서 이렇게 패망했다고 뼈저린 반성을 하였습니다. 포로 된 땅에서 이스라엘은 말씀을 모으고 말씀을 연구하며 말씀을 마음판에 부지런히 새겼습니다. 그 이후에는 예언자들이 더 이상 우상숭배에 대해서 비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상이 이스라엘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예수님도 복음서에서 우상에 대해서 비판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독수리 상과 로마 황제의 얼굴이 화폐에 새겨져 있다하여 데나리온이라는 로마화폐도 들고 다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성전에 환전상이 있었던 이유도 이런 불경한 화폐인 데나리온을 이스라엘의 화폐인 세겔로 바꾸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우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날에도 우상은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 때문입니다. 더욱이 현대는 이성과 과학이 발달한 시대입니다. 물론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곳에서는 우상을 여전히 신처럼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승이나 석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거나 상징물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신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우상은 없는가? 아닙니다. 우상은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문제는 하느님께서 왜 우상을 그렇게 싫어하셨는가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마치 사랑과 같습니다. 사랑은 한 사람만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떠나 다른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우상을 싫어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에도 우리 중심에 하느님 대신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상이 더 문제입니다. 보이는 우상은 차라리 보이기 때문에 배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탐심이라는 우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독버섯처럼 자라서 어느새 우리 마음판을 지배하고 말았습니다. 장승을 우상이라 하여 자르는 사람들은 진짜 우상은 보질 못하고 힘을 잃은 가짜 우상만 상대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보이는 우상이 신을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보이지 않는 신들을 현대인들은 섬기고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맘몬이라는 물질신입니다. 맘몬은 이제 종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행복을 결정합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합니다.
돈 있는 자 앞에서는 모든 권력이 숨을 죽이고 비굴해집니다. 돈때문에 대해서 요즘 정치인들과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습니다. 돈은 생명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기도 하고,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루터는 인간에게 세 가지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가슴의 회개(통회의 눈물), 정신의 회개(가치관의 전환), 그리고 돈지갑의 회개”
여러분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리고 그 돈을 이웃을 위해서 잘 사용하십시오. 돈은 소유한 자가 주인이 아니라 잘 쓰는 자가 주인입니다. 돈을 소유할 때보다 잘 쓸 때 행복합니다.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은 단지 죽음 이후의 세계를 대비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을 유용하게 사용할 때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뜻도 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물질을 많이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행복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물질을 많이 소유할수록 걱정 또한 더 많아집니다. 전에는 밥 한 끼 굶지 않고 살기만 하면 감사했는데 지금은 미래에 대한 걱정, 자녀 교육에 대한 걱정, 현재 자기 소유를 유지하기 위한 걱정들로 더 불안해졌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행복지수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걱정한다고 해서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키 크고 싶다고 해서 걱정하고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키가 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걱정하면 오히려 더 키가 자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걱정해도 소용없는 일은 빨리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늘 하루라는 시간뿐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직 않았습니다. 우리들에게 실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늘이라는 시간뿐입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늘도 망쳐서는 안 됩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늘을 잘 살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인생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일에 대한 계획을 갖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 하고 미래의 일을 걱정한다는 것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계획은 희망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꿈입니다. 그러나 걱정에는 전혀 하느님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신앙입니다. 내일에 대한 계획은 세우되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다만 오늘에 충실하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는 것은 우리 마음, 우리 사회, 온 땅에 하느님의 다스림이 임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우선 순위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활에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에 충성할 때 주님은 이 모든 것, 곧 먹고 마시고 입는 등 우리의 생활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들이 하느님 일을 가장 우선으로 알고 행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은 하느님께서 다 책임지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훈련을 할 때 “제자훈련 기간만은 최우선 순위를 이 훈련에 두십시오.” 하고 부탁을 합니다. 정말 그렇게 해서 하느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둔 사람은 그 훈련이 끝날 때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셨던 하느님의 놀라운 은혜를 증거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걱정은 없습니다. 다만 기도제목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