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으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유혹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통하여 옵니다. 신앙적으로도 의심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의심으로 시험이 듭니다. 물질에 약한 사람은 물질로 시험들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강한 부분을 통해서도 시험이 옵니다. 성격이 쾌활하고 좋아서 사람을 잘 사귀는 사람은 그것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사귀다가 유혹에 걸려들게 됩니다. 기도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은 자칫 기도 때문에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봉사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도 그것 때문에 교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어려움은 이 교만의 병에서 옵니다. 스스로 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없으면 마치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열심인 사람들은 이점을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유혹한 이 악마의 유혹은 이렇게 두 면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몹시 허기 져 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배고픔에 헛점이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배고픔을 유혹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을 가지고 돌로 빵을 만들라고 유혹한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만나는 가장 큰 유혹, 자주 만나는 유혹은 물질의 유혹입니다.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신앙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주님이 받으신 유혹은 ‘세상의 모든 왕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며’ 악마에게 한번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다 누리게 해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모든 왕국을 보이며 예수님께 했던 악마의 말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것만을 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말이 주는 의미는 아주 심각합니다. 세속적인 권세와 영광이 곧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악마의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놓치고 단순히 즐겁고 편안하고, 세속적인 욕심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악마의 도구로 전락한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육신적인 편안함으로 성도를 유혹해서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으로 유혹해서 영혼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로 유혹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상급과 생명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함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안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함으로 살고자 했다고 하면 무엇 때문에 핍박을 감수하며 좁은 길을 갔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바울로는 그 좋은 지위와 학식을 버리고 고난과 멸시를 받아 가며 십자가의 도를 전했겠습니까? 만약 오늘 성도들이 편안함을 원한다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비록 육신은 고달프고, 힘들어도 사명을 가지고 살아 갈 때에 참 평안을 얻는 것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까? 육신은 고통 속에 있어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기쁨을 알기에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악마의 유혹에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4:8)는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들도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주님과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고백인줄 믿습니다.
세 번째 악마의 유혹은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곳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가끔 악마는 우리를 위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네 믿음이 이 정도이다. 네 위치가 이 정도이다. 네 경력이 이것이다. 여러분 혹시 위에 올라가 있지 않으십니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악마는 항상 추켜세운 후에 밀어 떨어뜨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라고 유혹하였습니다.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인지를 증명해 보라는 유혹입니다. ‘네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 중에서도 하느님이 털끝 하나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 아니냐’ 라는 그럴 듯한 유혹이었습니다. 웬만한 신앙인이라면 물질적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물질적 손해를 감수하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또 가지고 있는 물질을 기쁘게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시련과 고통에 빠지게 되면 그런 믿음도 흔들리기 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때때로 만나는 인생의 시련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 번째의 유혹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악마는 그리스도인의 심령을 파고듭니다. '네 믿음은 헛된 것이다. 네가 믿는 하느님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네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이냐' 이것은 우리의 믿음 속에서 십자가를 빼 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 내려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지켜주시리라 하였고, 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너를 받들게 하시리라” 라는 악마의 유혹은 신앙을 단순화시키며, 기복적인 것으로 전락시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1:29)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로마8:16-17)
이 말씀들은 모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겪는 초대교회 교우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내 잘 못으로 온 시련이나, 잠시 겪는 어려움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온 어려움을 잘 이기고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느님의 자녀라면 주님을 위한 고난과 어려움도 겪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큰 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굳굳함을 지킵니다. 오히려 시련을 통하여 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악마의 유혹을 주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 담대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인생에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주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우리들이 받는 유혹을 보여주십니다.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유혹과 싸우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승리 하셨으므로 여러분도 승리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이기셨으므로 여러분도 이길 것입니다. 주안에서 늘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