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필립비 3:17절을 보면 저 자신과 성공회 모든 교회 그리고 안양교회를 돌아봅니다. 감옥에 갇혀서 필립비서를 쓴 바울로 사도는 “나를 본받으십시오.”했습니다.(1고린4:16, 11:1) 이것은 바울로가 교만해서 한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분이 갖는 특권이나 섬김과 복음전파의 업적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로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라는 뜻입니다.(1고린11:1) 쉽게 표현하자면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나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본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누가 스승인가?’, ‘누구의 제자인가?’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어느 교회에서, 어떤 성직자의 신앙지도를 받는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닮기 때문입니다. 안양교인들은 언제나 기도하며, “은혜와 평화 충만” “성령 충만으로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에 충실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교인들입니다.” 누구 닮아서 그렇습니까? 처음 예수 믿는 사람을 교회로 인도할 때 인도하시는 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일 낮예배만 나오는 분에게 인도 받아 교회에 나오는 분은 주일 낮예배만 나옵니다. 왜냐하면 배울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수요기도, 구역모임, 새벽예배 드리는 분과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은 다 나옵니다. 교회에 대해 올바른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예수 처음 믿는 분이 교회에 나오자마자 주일낮예배 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와 모임 등 빠지지 않고, 십일조생활도 하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이 계시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마도 그분을 교회로 처음 인도한 분이 “아예 시작할 때 제대로 하라”고 가르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신앙생활을 안하는 분이 새신자를 인도했는데 새신자가 열심히 하려고 하면 ‘처음부터 너무 열 내지 말어.’라고 불을 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된 자의 책임이 무겁고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로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하게 신앙생활 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권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그런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필립비 말씀에는 “여러분”(18절) 또는 “그들”(19절)로 표현된 사람들과 “형제 여러분”(17절) 또는 “우리는”(20절)으로 표현된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바울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 것은 “여러 사람들” 또는 “그들”로 표현된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필립3:18)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기보다는 뱃속을 하느님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서도 도리어 자랑”으로 여기고 “오직 세상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의 최후의 삶은 “결국 멸망.”뿐이기 때문에 바울로는 ‘형제 여러분 /그들 /우리는’으로 표현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사는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의 시민”(필립3:20) 이기 때문입니다. 시민권은 재산, 직업, 신앙 등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민으로서 가지는 여러 권리를 말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시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사는데 별 지장이 없습니다. 불법 체류자는 대한민국 시민권을 갖지 못해서 불안하게 살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민권이라는 것은 가진 사람은 잘 모르지만 없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필립비 지역은 금과 은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많은 로마의 퇴역장교들이 이주해서 사는 로마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이 그대로 주어졌던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마음대로 매질을 당하거나 재판하지 않고 감금 시킬 수 없었습니다.(사도16:37~39) 그래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바울로는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사도22:24~30) 이런 로마의 시민권을 사도22:28절에 보면 바울로는 나면서부터 가졌다고 했는데 돈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었습니다. 바울로는 유다인이었고 다루소의 시민으로 그 옛날에 벌써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필립비지역에서 로마시민권만 있어도 대단한 신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필립비 교인들에게 바울로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다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필립비교인들 뿐 아니라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 모두는 지금 땅을 밟고 살지만 하늘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믿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세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필립3:20) 우리는 지금 이 땅의 사람으로 살지만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닙니다. 한 줌의 재나 몇 평 땅에 묻히는 인생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느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그곳은 새로운 곳입니다.(요한묵시21:1-4)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껏 우리가 보고, 알고, 느낀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고, 알고, 경험하고, 상상했던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곳은 거룩하고, 구별된 곳입니다. 여러분은 성도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 느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았다고 성격 급한 사람이 느려지지 않습니다. 은혜 받아도 급한 사람은 급합니다. 우리 모두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삶을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음으로 우리를 구별해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삼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구별된 곳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게 있다는 뜻입니다. 지옥과 다르고, 세상과 다르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이 설계한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곳도 아니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그곳은 하느님이 만든 곳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권세가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임하면 여러분은 하느님의 통치 아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통치. 권세의 통치. 명예의 통치. 자존심의 통치를 받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고, 봉사를 잘하던 분들이 자존심 상해서 안한다고 합니다. 아무개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안한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통치하셔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 때문에 하고 안합니까? 그 사람이 천국가면 그 사람 보기 싫어서 천국에 안가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 자존심 나라의 백성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 자기 자존심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툼이 있고 분쟁이 있는 곳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가정에, 일터에, 교회에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며,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언제 어디서나 예수 이름 드러내며, 예수 향기를 풍기며, 복음을 전하며 사는 믿음의 사람, 하늘의 시민권자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