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아간다고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압니다. 양심의 결박과 영적인 결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을 보실 때, 외면의 상태만을 보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몸은 구속되어 있지만 자유한 어떤 경우에는 몸도 마음도 심각하게 '매여 있는'사람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매여 있는 상태를 안타깝게 여기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이렇게 살펴보실 때 매여 있는 사람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외면도 내면도 매인 사람 외면은 자유로운듯하지만 내면은 결박당한 이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한 불쌍한 여자를 보셨습니다. 이 여자는 지난 18년 동안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여자를 고쳐주시자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을 한 것을 가지고 분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라 하여 이 여자를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 즉 “이 사탄에게 매여있는 것을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16). 그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어떤 눈으로 보셨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여인은 '매인여인'이고 병든여인 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과거에 어쩌다가 오랜 시간 사탄에 매여 있게 되었는지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지금 이 여인의 상태를 주목하고 계십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기에 이 지경이 되었냐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마에 사로잡혀 허리가 굽어져서 몸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과거는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현실"만을 보고 계십니다. 이 여인의 현실은 무엇인가? "사탄에 매여 있는"일 이었습니다. 물론 매이게 된 근본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매일 수밖에 없는 사연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은 지금 사탄에 매여 병마에 매여 자유를 박탈당한 여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몸은 자유롭지만 심령에는 자유가 없는 사람 그 몸도 심령도 자유하지 못한 사람이 이 자리에 얼마나 많습니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였던 '노예' '종'을 생각하면 그들은 육체와 심령이 모두다 주인에게 매여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결코 인격으로 대접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육체가 매이는 일은 거의 없지만 심령이 무언가에 매여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질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는 점점 '금연구역'이 확대되면서 흡연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어느 건물에나 금연구역이 되고 '흡연실'은 무척 비좁은 공간에 따로 마련이 되는데 거기 들어앉아서 기어이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냥 끊어버리면, 건강에 좋고 깨끗한데 그게 왜 안 되는 걸까?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담배 좀 피우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거기 매여서 이젠 헤어 나오질 못하는 것입니다. 도박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이젠'어쩌다 그렇게 되었냐'고 따지지 마십시오. '왜 그걸 하느냐'고 묻지도 마십시오. '믿는 사람이 그런 걸 하면 되겠냐'고 훈계하지도 마세요.
왜냐하면 예수님도 그걸 따지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단지 측은히 여기시며 "네가 지금 거기 매여 있구나"하기만 하셨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고 드러낼 필요도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숨어서 할 순 있겠지만 문제는 "심경에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 무언가에 매여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심령에 자유가 없는 교우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고치시고, 풀어주시는 전능하신 예수님을 꼭 만나시길 소원합니다.
남의 말에 상처를 잘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오해하고 스스로 실족하여 넘어지는 분입니다. 이런 분에겐 말 한마디 건네기가 어렵습니다. 이유는 가슴속에 응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치유 받지 못한 상처가 평생 가슴속에 간직되어 있으니 그것에 매여 자유를 상실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보았을 때 이 여인의 안타까운 현실을 주목하셨다. 사실 자신의 처지를 보고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된 인생이다' 포기하는 인생들이 많은데 예수님은 그렇게 보고 계시질 않았습니다. "여인아, 네 병이 이미 너에게서 떨어졌다."(12) 이것은 매임에서 풀어지는 선언이다. "여인아"라고 하였지만 16절에서는 "이 여자도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사탄에게 매여있는데 사탄의 사슬에서 풀어주지 말아야 한단 말이냐?"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이 여인을 그냥 보통 여인으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매여 있는 현실을 넘어서 장차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나 가족분들 중에 '난 이렇게 가끔 교회에 나오면서, 세상습관 그냥 유지하고 살다가 이정도 신앙생활만 하다가 갈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분들을 예수님께서 보시면서 "아브라함의 아들아 아브라함의 딸아" 즉 '믿음의 사람아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매여 있어서 그렇지 그 매임에서 풀어주기만 하면 얼마나 잘 믿고 은혜도 잘 받고 주일성수 잘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사람이라고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18년 동안이나 사탄에 매여 살아온 여인 속에서도 '잠재된 신앙'을 보셨습니다. 오늘 무언가 현실의 삶속에 매여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서도 잠재된 무엇을 보시게 된 줄 믿습니다. 사탄의 권세에 매여 있어 그 종노릇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는 사탄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풀어주면 참 하느님의 백성이 됩니다. 이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나쁜 습관이 있어도 묵은 죄가 있어도 주님이 보실 때 여러분은 "믿음의 자녀"입니다. 이제 매인 것에서 자유를 얻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매여 있는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그 속에 있는 하느님의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열려지게 되시길 바랍니다. 헬렌 켈러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말 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노벨상을 탄 학자가 됩니다. 그에게는 설리번이라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리번 선생은 본래 시각장애인이었다고 합니다. 수술 받고 희미하게나마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 7살의 헬렌 켈러를 만났는데 설리번은 이 아이의 외면보다는 그 속에 하나님의 딸을 보았다고 합니다. 매인 것에서 자유롭게 된 헬렌캘러는 위대한 일을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동안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환자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 속에 있는 아브라함의 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이 매임에서 자유하길 원하고 계십니까? 세상 것에 매여 살던 여러분이 오늘부터 예수님께 매이는 주님의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