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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더 큰일을 보는 믿음

작성일 : 2013-09-28       클릭 : 302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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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 앞에 새롭게 개혁된 교회라고 할지라도 끝없는 개혁을 통해서 늘 하느님 앞에 새로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세면을 한 사람이라도 다음날 되면 또 다시 세면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 지나면 또다시 세면을 해야 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고칠 것 아무것도 없어.'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부패되는 것이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영성을 상실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새로워짐의 역사는 언제나 성도들의 영적 깨우침과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진행되어져 왔고 늘 용기 있고 자신 있고 또 기쁨 속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자기주장이나 또는 신중한 숙고와 기도 없이 실행하게 되면 그것은 나중에 예기치 않았던 큰 어려움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은 생각과 기도 끝에 진정으로 하느님 나라에 도움이 되고 하느님 나라에 기여하는 방법과 방향을 찾아야만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핏 값으로 사신 거룩한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주인은 집이 더러우면 치우고 청소하고 깨끗하게 하여 아름답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청소 안하고 그 집에서 나가면 그뿐입니다. 그 차이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로 불림 받은 필립보가 알고 있는 나타나엘에게 가서 예수님에게로 초청합니다. 나타나엘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얘기를 듣고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그래도 필립보는 ‘와서 보라’는 것입니다.

 

나타나엘이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예수님은 나타나엘의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나타나엘이 깜짝 놀라서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그의 신앙을 예수님께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필립보가 적어도 예수그리스도를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필립보는 부끄러운 성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 앞에 누구든지 오면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도 예수님의 능력 앞에 무릎 꿇고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이고 그는 예수님의 은혜를 따라 더 큰 역사를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창피하지 않은 예수님, 창피하지 않은 성도, 그리고 우리는 당당한 성도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며 주의 역사를 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부분을 잘 들으셔야 됩니다.

세상이 교회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비난하고 요구하고 교회에 대해서 질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요구하는,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는 얘기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얘기를 들었을 때 표면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진정 그 마음속에 꺼내지 못해서 그 말 대신 다른 말을 하는 것의 의미를 파악을 해야 합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기독교를 비난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파하고 요청하는 슬픔이 있다는 뜻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게 어려운데, 우리는 이것을 도와줘야 되는데 당신을 우리를 돕지 못하고 그와 같이 있습니까? 하는 얘기지요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요청하고, 그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럴 필요도 없지요.

 

환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지요? 기도해주는 일, 필요를 위해서 내가 줄 수 있는 만큼 주는 일, 주고 싶은데 없다면 주기 위해서 내가 노력하여 무엇인가를 가지고 얻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되는 기본적인 생각은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를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예수 믿는다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 예수 믿는 것에 대해서 왜 창피하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그렇게 평가해도 나는 싸. 내 자신이 부족해.’ 라고 느낄 때입니다. 영적으로 위축을 느낄 때 우리가 예수 믿은 것에 대해서 부끄럽고 위축되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 자신이 어떤 믿음의 짐을 지기에는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 짐을 지고 싶지 않을 때는 창피하게 느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도 중에서도 세상의 논리와 같이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서 부끄럽게 여기고 오히려 교회나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이 완벽해서 예수 믿은 것이 아니며,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 은혜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놀라운 힘을 줍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은 자기가 피해 다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그들을 능가하여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과 능력을 우리들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생명의 진리는 우리를 위축시키지 않고 당당하게 만드는 겁니다. 내가 도망치던 사람에게 찾아가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그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오는 이와 같은 역사를 이루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자신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며 복음전파를 위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확신과 단호한 결의에 찬 행동을 봅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편견을 단번에 제압해 버렸어요. 너무 자신 있으니까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늘 말씀드리지만요, 나 자신에 대해서 구구하게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삶이에요. 설명하지 않아도 내 삶을 보고, 내 모든 삶의 행적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수 있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나타나엘게게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대하게 하시고 날마다 새로운 일을 이루시고 새로운 기대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은혜를 느끼는 것이 있는데, 뭐냐 하면 날마다 하느님께서 새로운 소망과 꿈을 주시는 거지요.

 

우리의 삶은 거의 비슷하잖아요. 반복된 삶을 살잖아요. 반복된 삶이 반복된 의미로 와 닿지 않고, 날마다 하느님의 새로운 계획 속에 진행되니 그것이 날마다 우리에게 지루하지 않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게 한단 말이지요. 똑같은 일을 해도 전엔 먹고 살기위해서 살았어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이제는 남을 돕기 위해서 산단 말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사는데 이제는 하느님이 주신 꿈을 향하여 달려가는 겁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꿈과 하느님의 은혜와 기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당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도 당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줄 때, 정말 그것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당당합니다. 끌고라도 갈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 주십시오.’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안양교회 교우들이 부끄러움 없는, 창피해하지 않는 교우들이 되고, 창피하지 않은 예수님을 기쁨으로 전할 수 있는 당당한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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