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망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모르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높은 명예를 얻는 것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이 있고, 집 없는 사람은 자기의 집을 가지는 소망을, 또 직업이 없는 사람은 직장을 구하는 것 등의 여러 가지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소원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도 소원이 있지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으로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솔로몬에게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고 물을 때 솔로몬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고 흑백을 잘 가려 낼 수 있는 명석한 머리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물을 때 엘리사는 대답하기를 “남기실 영검에서 두 몫을 물려주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은 무엇인가? 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라가게 될 때 무슨 마음으로 따랐을까? 첫 동기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예수님을 맞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점령되고 경제 정치 문화 종교 할 것 없이 전부 타락하고 눈에 보이는 것 전부다 죄악뿐입니다. 유다인들은 옛날 다윗 왕 때처럼, 솔로몬 왕 때의 영광처럼 그런 메시아의 나라가 빨리 이 땅에 오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힘없이 돌아가실 때 큰 실망을 했었지요. 그리고 부활한 다음에도 또 물어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가 이때입니까?"그걸 보면 끈질기게 그들의 마음속에는 메시아의 시대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그것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동기였다고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처음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들은 생각이 바뀝니다. 간절히 바랐던 처음 동기가 바뀝니다. 여러분, 신앙이라는 것은 이 신앙의 동기가 바뀌고 또 발전되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보니까 예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생활을 보면서 예수님을 권능의 사람, 능력의 사람으로 만나게 되면서 동기가 바뀌게 됩니다. 그 변화 된 제자들이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소원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이것은 처음부터 가졌던 생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서 변화된 제자의 모습으로서의 소원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저들이 깨달은 것은 믿음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칩니다. 오천 명을 먹이는 능력을 행합니다. 그럴 때마다 거기에 작용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경험하면서 그들의 신앙동기도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비로소 믿음에 대해 눈을 뜨고 그것이 신앙을 변화시키는 동기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설명하십니다. 6절입니다."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믿음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어떡해야 믿음을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믿음을 가졌다가 믿음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오래 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도 스스로 상처 받는 데는 잠깐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하십니다. 7절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종은 여전히 종입니다.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나는 보잘 것 없는 종일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르고 충성된 종의 모습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그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바치겠다고 하는 마음이 생겼다가 받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버리고, 수고하겠다고 하다가 또 칭찬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버립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까 믿음도 쏟아지는 겁니다.
처음부터"나는 종입니다. 섬기는 자입니다."라는 동기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절대로 시험에도 들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출발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반드시 출발이 잘못되었다고 마지막까지 잘못 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출발이 시원찮았더라도 바뀌면 됩니다. 그 동기가 변화 되어야 믿음이 자랍니다. 매일 잘못된 그 신앙동기로 살아봤댔자 늘 불평이고 불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몇 십 년을 믿었다고는 하지만 겨자씨만한 믿음도 없이 살아가는데 거기에 무슨 능력이 있겠으며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믿음이란'거기까지만'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가는 날까지 변화되고, 나아지고, 성장하고 성숙해야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것이 바로 종의 바른 자세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먼저 명령받은 일을 잘 행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순종을 뜻합니다. 하느님은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서 크게 쓰십니다. 말로만의 순종이 아니라 몸으로 행하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이것은 겸손입니다.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종이라는 신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신자들은 어디 그렇습니까? 남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알아주지 않으면 배반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나타내려 합니다. 우리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주님을 섬기는 겸손한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큰 믿음을 갖기를 소원하십니까? 큰 직분을 갖기를 소원하십니까? 기왕 믿을 바에야 남보다 월등한 큰 믿음 갖기를 소원하고 남보다 큰 직분을 받아서 남보다 더 많이 충성하고 봉사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또 그런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리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작은 일 즉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부터 착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둘째, 맡겨진 일을 다 수행한 후에도 “나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라는 자신의 신분을 알아야 하고 겸손하여야 합니다.
셋째,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누가 칭찬을 하려고 해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주님은 반드시 큰 믿음을 주셔서 ‘뽕나무더러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고 명할 때에 이루어지는 기적을 일으키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마르16:16-18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겠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르게 될 터인데 내 이름으로 마귀도 쫓아내고 여러 가지 기이한 언어로 말도 하고, 뱀을 쥐거나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을 것이며 또 병자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안양교회의 교우들은 큰 믿음을 받아서 이와 같은 기적을 일으키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하고 축복합니다.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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