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서 대사면을 단행할 때가 있습니다. 국가의 권위로 너그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국민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서 범법자들의 공로나 행실과는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그들의 죄를 사해주는 것, 이것이 대사면입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는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죄인들을 다 벌을 줄 수 없고 하느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인간은 죄인이고 하느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그렇기 때문에 유일한 방법이 하느님의 권한으로 모두의 죄를 사해주는 하나의 대사면의 방편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 나쁜 것이지만 주님의 죄사함을 거부하는 것은 더 나쁜 죄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만큼 되는지를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요한1장에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로마 5장에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예수님을 비교한 것인데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됐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두 인물을 비교하게 되면 아담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죄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세상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면 굳이 어떤 교회를 다니라든가 기도를 하라든가 경건하게 살라든가 그런 조건이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 능력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겠지만 예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마음속에 두지 않고 굳이 예수님을 섬기지 않고 내가 굳이 크리스챤으로 살지 않아도 이미 그 은혜가 족하다. 이것이 복음의 허점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인데 오늘 복음 말씀이 그러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멀찍이 서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나병환자가 뜻하는 것은 죄인입니다. 인간의 죄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나병처럼 추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이 예수님께 자비를 구했을 때 열 명이 다 깨끗해졌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죄사함의 능력이 초자연적이고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에게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한 것은 율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예수님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깨끗해졌기 때문에. 예수님께 돌아온다고 해서 더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고 떠나간다고 해서 도로 나병환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예수님 없이도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유혹이에요. 그들의 유혹은 예수님 없이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강한 유혹입니다. 그런데 열 명 중에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 찬양을 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셨습니다. 듣기에는 예수님이 섭섭해 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섭섭해 하신다고 아홉 명이 다시 나병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예수님이 한 번 깨끗하게 하시면 영원히 유효합니다. 한 번 깨끗해지면 하느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한번 깨끗하게 하시면 영원히 깨끗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깨끗함을 받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마리아 사람이 진짜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그냥 죄사함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께 돌아오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이 진짜 크리스챤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목적은 그저 어떤 도장처럼 우리의 죄를 사면하기 위한 도구로 보내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은 인류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셨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은 율법 앞에서 깨끗함을 입었지만 이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이 친히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사면과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용서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이냐? 그건 예수님만이 아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모두 깨끗케 하셨습니다. 열 명 다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예수님이 기뻐하셨고, 그것을 예수님은 믿음이라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셨습니다. 여기에 참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된 신앙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병고침을 받고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습니까? 차라리 썩어질 육신은 병들었다고 해도 영혼이 구원받는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이겠습니까?
오늘 모든 교우들이 주님의 기적에 감사할 뿐 아니라, 구원을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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