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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살아있는 산자의 하느님

작성일 : 2013-11-09       클릭 : 409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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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묻기 전에 입에다가 돈을 넣어두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저 세상으로 강을 건너가는데 배 삯을 주라고 하는 뜻에서였다고 합니다. 헬라의 철학자들은 철학적 견지에서 영혼은 불멸하며 반드시 살아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람이 이 세상에서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이 영원히 산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라밋이라는 건물을 지어서 거기에 시체를 모셨던 것입니다. 인간이 영생한다고 하는 생각은 아주 보편화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다교 종파 가운데 영적인 실재와 부활에 대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두가이파 사람들입니다. 유다종교에는 두 개의 큰 파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파인데 이들은 보수파에 속하는 정통 율법주의자들로서 언제나 율법을 지키는데 지나치리만큼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사두가이파로서 솔로몬 시대의 제사장 사독에서부터 유래되었는데 로마정치와 결탁한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내세도 믿지 않고 성경도 모세 오경만을 경전으로 삼았습니다. 이들의 신앙관은 너무 편협해서 성경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논리와 이해의 차원에서 읽었습니다.

 

이런 형태의 의식구조는 현대인들 가운데서도 많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만 믿지 영적인 것은 전혀 이해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 당시 사두가이파 사람들처럼 부활과 영적인 실재를 믿지 못하는 많은 현대인들에게 들려주시는 신령한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세가 아니라 현세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부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서 로마정부와 결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중요시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황당한 것이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의 질문도 부활에 대한 궁금증에서가 아니라 부활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보이기 위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정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의 문제를 생각할 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으로 가정질서의 파괴를 염려하게 된 것입니다.

 

한 여인을 두고 일곱 형제가 후사를 두기 위해서 살다가 죽었으니 부활 때 과연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가정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누구든지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가정을 이루고, 가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만약 가정이 온전치 못하면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보다 더 깊은 사랑의 공동체는 없습니다.

 

사회는 생존경쟁의 전쟁터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상처입고 억눌리다가도 이해와 사랑과 동정이 있는 가정에 돌아오면 상처를 치료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치유와 안식과 보호와 평안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대부분이 부부, 자녀간에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나 우리 나라 법에서도 가정을 아주 중요시하기에 가정 파괴범은 가장 추악한 죄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라도 가정을 소홀히 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참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이 세상의 감각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맏이가 결혼을 했으나 후사를 얻지 못하고 죽어서 동생들 여섯이 형수와 차례로 후사를 갖기 위해서 살았는데 저 세상에서는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세상적인 감각으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저 세상은 시집 장가가는 일이 없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광스럽게 산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늘 나라는 이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36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의 공포일 것입니다. 때때로 사업에 실패하고, 중병으로 고생도 하지만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처럼 겁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요한묵시 21:4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감격과 즐거움으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36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부활한 성도는 천사와 같이 더 이상 육적인 지배를 받지 않고 천사들처럼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하늘 나라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영광 가운데 살았는데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는 이런 영광스러움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러한 영광을 차지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자기 마음에 영접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생명을 간직하게 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요1:12)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심지어는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이성에 갇힌 신앙인들도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평소에 부활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복음 말씀에서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을 향해서도 부활에 대하여 진지하게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에게 대답하시기를 모세도 가시덤불에서 만난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던 사실을 상기시키셨습니다(37절). 덧붙이시기를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산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38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시절에 아브라함도 이사악도 야곱도 이미 다 죽었을 때였습니다. 이들이 죽었기 때문에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라고 말한 것은 다시 말해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은 오래 전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의 시대에만 활동하신 과거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현재에 살아 역사하시는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이미 죽었던 선조들도 하느님 안에서 살아 있음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진실로 믿음 안에서 생명을 가진 자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생명을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은 지옥 불 속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되지만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하느님이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을 믿고 영생을 확신하는 우리 또한 복이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주신 가정은 하느님을 섬기는 보금자리이며 믿음의 대를 이어야 하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갑시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저 영광스러운 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주님께 영광된 일을 하고 복음을 힘차게 증거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모든 산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저 좋은 하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의 가치관으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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