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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삼일절


십자가의 사랑과 용기

작성일 : 2013-11-23       클릭 : 252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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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19년간 감옥에서 옥살이를 한 주인공 장발장은 어느 신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밤중에 은잔을 훔쳐 도망갑니다. 도중에 형사 자베르에게 잡혀 교회에 끌려왔을 때 신부는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은잔뿐 아니라 은촛대까지 주었는데 왜 은잔만 가지고 갔느냐”고 말합니다. 장발장은 감동해 회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작가는 기독교의 용서와 사랑의 정신을 이 작품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의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옳고 그르다’‘맞고 틀리다’는 법의 원리, 정의의 원리지만 기독교의 원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인간을 변화시키고 감동시키는 것은 ‘율법’의 원리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잊어버리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그냥 지나치는 것도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란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용서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어렵기 때문에 용서하면 능력이 나타나고,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쪽에 죄수도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마태27:44절에 나오는 ‘두 강도들’은 둘다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런데 루가23:39-40절에서 두 죄수 중 하나가 예수님을 모욕하자 다른 죄수는 모욕하는 죄수를 꾸짖습니다. “너도 저분과 같은 사형 선고를 받은 주제에 하느님이 두렵지 않으냐?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야?”(40-41절) 그렇게 말한 후에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라는 고백을 받으시고 예수님은 그에게 낙원 즉 천국을 허락하셨습니다(42절). 마태27:44절에서는 두 강도가 다 예수님을 모욕했는데 왜 오늘 루가복음에서는 두 죄수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합니까? 왜 그런 변화가 생겼습니까? 그것은 루가23:34절 말씀에 나오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하신 용서의 말씀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십자가상의 한 죄수는 깊은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용서의 기도. 용서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이고, 십자가의 핵심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용서를 잘 하지 못합니다. 용서는 내 힘과 노력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용서는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는 용서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용서해 달라는 ‘용서의 은혜’만 구하지 말고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용서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용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불쌍히 여기고 기도 합시다. 사실 살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기도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기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기도하면 마음에 평화가 옵니다. 기도하면 상처 안에서도 하느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그때 상처는 아물게 됩니다. 분노하면 길이 막히지만 기도하고 용서하면 길이 열립니다. 기도하면 용서할 수 있는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기도하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의 단점은 보이지 않고 장점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면 용서가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승리자가 되려면 기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저 사람들을 용서해달라고 하시면서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이 왜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까?

간단히 말하면 자기의 죄와 허물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 연약합니다. 나 자신도 연약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사람의 연약함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실수가 많은지 모릅니다. 말 하나에도 얼마나 실수가 많습니까? 우리는 모두 실수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보았을 때 정의의 잣대로만 그를 정죄하지 말고 침착하게 그를 이해해 보려고 해야 합니다. 사실 그 사람의 잘못은 대개 과거에 우리가 저질렀던 잘못이고 현재 저지르고 있는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소한 차이 때문에 원수처럼 지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흥분해서 모든 관계를 깨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내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교회나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깝게 지내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사소한 것으로 실망할 때가 많지만 우리는 기대치보다 이해치를 높여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용서는 나의 선택이 아닙니다. 용서는 권면도 아닙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사실 내게 큰 상처를 남기고 떠난 그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나의 감정을 따르면 나를 무시하고, 내게 결정적인 아픔과 상처와 실패를 남기고 떠난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말씀대로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무조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 기분이 내키지 않아도 용서하라고 하시고,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용서할 수 있어도 이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다는 그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여러 변명과 이유를 대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정말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용서하라는 명령에 “예! 용서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특히 특별한 기도 제목이 있어 그 기도가 응답받기를 원하는 분들은 반드시 내 주위에 용서할 대상이 없는가를 살펴서 먼저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가 없으면 기도응답도 막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은 회개하는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처럼 우리도 과거의 상처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현재의 일로 싸워야지 과거의 그 일을 끄집어내서 “옛날에도 그랬지 않느냐?”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번 용서한 죄를 재론하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과거의 상처를 재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힘써 용서해야 합니다. 미워하면 같이 죽게 되지만 용서하면 같이 살게 됩니다. 남을 원망하고 미워하면 은혜가 없고,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고, 응답 받는 기도가 불가능해 집니다. 신앙도 좋아질 수 없고, 축복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모여 있다보니 때로는 갈등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라고 하느님이 짝 지워 주신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내가 용서하면 그 사람도 변화됩니다. 주님의 용서하는 기도를 듣고 한 강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스데파노의 용서의 기도가 바울로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의 용서의 기도가 우리 배우자를 변화시키고, 우리 자녀와 가정과 교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영적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어려움 속에서도 형제들을 용서하는 사람이었기에 끝까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용서하기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욱 높이 들어 쓰실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사람에게 향수를 뿌려주는 풀꽃 향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처럼 용서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용서는 축복받는 가장 위대한 길입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하느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지금 원수와 미운 사람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오늘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고 그 사람을 충심으로 용서함으로 마음의 평안과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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