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실패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내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열심히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참지 못하고 기도를 멈춥니다. 열심히 전도하다가 효과가 없으면 전도를 포기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했음에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사업의 큰 어려움을 만나면 신앙의 회의에 빠집니다.신앙의 회의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하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이 현재 앓고 있는 병중의 하나가 도무지 참지 못하는 ‘성급증’입니다. 그러나 원래 우리나라 사람이 이렇게 급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차재호 교수에 의하면 구한말(舊韓末)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끈기가 있고 고통과 억압을 잘 견딘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 36년 동안에 빼앗기고 해방과 6․25 전쟁 중에 쫓기는 삶 속에서 생긴 병인지 모르겠지만 너나없이 성급증에 걸려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성급한 증거 유형을 보면 (1)자판기 커피 눌러놓고, 컵 나오는 곳에 손 넣고 기다린다. (2)사탕 깨물어 먹는다. (3)기다리던 버스가 오면 도로로 내려간다. 그리고 문 열리기도 전에 문에 손을 대고 있다. (4)식당에서 앉기도 바쁘게 재촉하고 10분 내에 먹고 일어난다.
한국인은 너나없이 이러한 성급증에 걸려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이러한 성급증은 많은 장애 요소가 됩니다. 빨리 응답이 안 된다고 기도하다가 포기합니다. 오늘 야고보서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참고 기다리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5:7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농부는 땅이 귀중한 소출을 낼 때까지 끈기 있게 가을비와 봄비를 기다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다림과 끈기는 적극적인 인내,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가지는 인내를 말합니다. 열매를 바라보면서 인내하라는 것입니다.아마 농부처럼 잘 참고 기다리는 것을 배운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참지 못하는 농부는 농부로서 자격이 없습니다. 농부는 일년 내내 참고 기다리면서 일을 합니다. 봄이 오면 거름을 내고 밭을 간 다음 씨앗을 뿌립니다. 때를 따라 거름도 주고 농약도 칩니다. 그러면 좋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옵니다. 그러나 농사짓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어느 때는 곡식이 한참 자라는데 비바람이 불어 곡식을 쓰러뜨리고 병충해가 나타나며, 새들이 와서 쪼아 먹기도 합니다. 멧돼지가 나타나서 곡식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뉴스도 있습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비가 잘 오지 않고 가뭄이 극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때라도 농부는 씨앗을 심을 때는 봄비를 인내로 기다리고 곡식이 익을 때는 가을비를 인내로서 기다립니다.
이처럼 농부들은 비바람이 부나 가뭄이 오나 뙤약볕 속에서라도 가을 들판에 탐스럽게 열릴 열매를 소망하면서 오래 참는 것입니다. 성경속에 나타난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이러한 적극적인 인내를 소유한 분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실 약속의 열매를 바라보면서 수많은 세월을 참았던 것입니다. 노아는 120년을 방주를 지으면서 하느님의 때를 기다렸고,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충성을 다하면서 약속의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40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기다렸고, 다윗은 엄청난 시련 속에서라도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 부은 약속을 소망하며 많은 세월을 인내로 기다렸습니다. 역사 속에 살았던 위대한 이들도 다 소망 중에 인내한 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눈앞에 있는 답답한 문제나 환경, 시련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반드시 우리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날이 오게 하실 줄 소망하고 참고 기다리면서 믿음의 씨를 심으십시오. 기도의 비료를 더 주십시오. 인내의 삽으로 더 깊이 파내려 가십시오. 그러면 큰 열매가 열리는 날이 곧 올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음을 굳게 함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8절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굳게 하라’는 뜻은 ‘굳게 고정 한다’입니다. 즉 마음을 굳게 고정하라는 내용입니다. 어디에 고정시킵니까? 8절 하반절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고정시킬 곳은 주님입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불만이나 탐욕, 음욕이나 명예욕, 미움이나 증오도 전부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동시에 기쁨이나 감사, 사랑, 대접하는 것도 사실 마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은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어느 사람은 궁궐에서도 불행을 느끼고 사는 반면, 어느 분은 초막에서도 천국을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4:23에서 말씀하기를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 된 삶의 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생명이 움트기도 하고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을 어떻게 지킬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고정시키도록 계속 힘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물질에 마음을 두거나 자녀이나 명예에 마음을 두면 사탄이 그 마음에 틈타서 탐욕과 음욕과 명예욕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에 매여 있습니까? 마음은 바다와 같습니다. 의심은 큰 풍랑과 같아서 신앙의 배가 큰 흔들림으로 시달리게 되고 심한 경우 파선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굳게 하고 있을 때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배는 힘차게 나아갑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아무리 답답하고 안타까운 문제나 환경이 눈앞에 있을지라도 거기에 매이지 말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주님께 고정하여 두고 인내로서 기다리므로 주님의 역사를 만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들은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9절 “형제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소망 중에 기다리는 인내의 삶을 살 때, 가장 조심할 것은 서로 남을 탓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입도 지켜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입이 원망의 말을 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왜 원망이 생깁니까? 마음을 주님께 고정하지 않고 자기의 욕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 마음 탓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으면 주님의 평안과 기쁨, 사랑과 용서의 마음으로 가득 차서 거기에서 감사와 찬양이 입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내 욕심에 마음이 매여 있을 때는 거기에서 이기주의가 생기고 남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범죄 후 하느님의 은혜가 떠나자,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는 뱀을 원망했습니다. 9절에서 보면 원망하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이는 사탄이 틈타고 있는 마음이요 사탄이 기뻐하는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람은 입만 열었다 하면 원망하기에 빠릅니다. 하느님은 원망하고 교회와 성직자를 원망하고 부모나 남편, 아내와 자식을 원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의심하는 죄보다 더 큰 죄를 짓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원망하므로 남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망의 말을 하면 이것이 듣는 이의 마음속에 씨앗이 되어 미움의 나무를 키우고, 결국 원망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서로가 칭찬하면서 살면 점점 영육 간에 강건해 집니다. 그러나 서로가 원망하며 살면 서로 간에 점점 병들어 가게 됩니다. 야고보서 3장에서도 단물과 쓴 물을 말합니다. 혀를 통해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찬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남을 위로하고 격려 한다면 이는 단물이 나오는 혀입니다. 어느 부부는 비록 가난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서로 고마워하면서 칭찬하며 격려하며 삽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은 단물을 먹고 자람으로 그 심성이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그러나 어느 부부는 혀로 서로 비난하고 원망하는 것으로 쓴물이 나오게 합니다. 그런 부부 밑에 자녀들은 쓴 물을 마실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칭찬은 큰 치료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분들은 모두 인내로 기다린 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인내하면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 지는 사람이 욥입니다. 10절 “형제 여러분, 고난을 참고 이겨낸 사람들의 본보기로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들을 생각하십시오.”고 했습니다. 욥은 가장 참을 수 없는 지경에서 오래 참아 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욥은 당대의 의인이었으나 어느 날 큰불행으로 자녀들이 몰살당하고, 재산을 순식간에 잃어버리는 큰 비극을 만났습니다. 욥이 무슨 죄를 져서 이러한 천벌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아무 죄도 없이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니 그 영적 고통이야 말로 참람 그대로 입니다. 우리 같으면 자식 중에 몇 명이 그렇게 다 죽었으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떠나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온 자녀, 온 재산까지 다 잃었습니다. 온 몸이 피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너무 가려워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친구들이 와서 위로인지 훈계인지 끝없이 떠들어대지요, 옆에서 그의 아내는 자식을 잃고 나서 악에 받혔는지, 차라리 하느님을 원망하고 죽으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욥의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한 것입니다. 욥은 전혀 위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하느님도 전혀 의지할 수 없는 영적인 암흑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캄캄한 날에도 욥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아내가 뭐라고 하든, 친구가 뭐라고 따지든 오직 그 마음을 하느님께 고정시키고 참았습니다. 그 때 하느님이 더 좋은 열매를 욥에게 허락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비난과 원망을 들으면서도 11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가장 연민과 자비하신 하느님만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하느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보상해 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욥의 고난에 비하면 우리가 당한 고난이나 문제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입니까? 문제 앞에서 낙심하거나 원망한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도우심을 바랄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을 믿되 자비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사랑의 하느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을 의심하는 환경에서도 그런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 때 오래 참고 기다리는 믿음을 보시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운 이 때에 우리 앞에 놓인 답답하고 안타까운 환경을 보지 마시고 열매를 소망하며 참고 기다리십시오. 마음을 주님께 고정시키고 굳게 하십시오. 서로 남을 탓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참고 이겨낸 앞서 간 성도들과 예언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인내를 본 받아 살아감으로서 하느님의 큰 도우심을 만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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