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문화가 이끄는 시대입니다. 문화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유행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따라오도록 유도했는데, 요즘은 문화라고 해서 사람들이 누가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본인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합니다.
그 한 예가 2002년 월드컵이었습니다. 응원하라고 해서 100만명이 모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모이라고 하지 않아도 멋있거든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모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새벽에, 밤잠 자지 않고 모여서 응원하는 것입니다.
문화가 우리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 큰 때에 기독교도 하나의 문화 형태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기독교 복음은 문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는 것이 불경건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문화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될 수만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독교 문화를 통하여 복음이 전달되고 생명이 구원될 수만 있다면 이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의 기독교 문화는 건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기독교 문화가 많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12월하면 성탄절,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듯 이러한 문화 컨텐츠를 복음화하는 사역으로 전환해서 해 봄직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미국은 기독교 신앙 위에 나라가 세워져서 그런지 기독교 문화가 있습니다.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어디를 가도 사회 제도를 보아도 기독교 배경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예로 성탄절이 다가오면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성탄 장식을 집 주변에 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기독교 문화가 잘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기독교문화라고 생각했어요. 이러한 부분에 열심이었기에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문화는 형성되지 못했다는 겁니다. 기독교 문화라는 말은 단순히 성경이나 신앙을 주제로 한 그림이나 음악을 만드는 것만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문화라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변화된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말하는 거예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기독교 문화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핵심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복음이 증거 될 때에 일어납니다. 구원이 단순히 성경을 준다고 해서 일어납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수가 많다고 저절로 일어납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 복음의 역사는 예수를 믿은 우리들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축복된 삶은 하느님이 우리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지,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사명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 모두에게는, 하느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데. 다만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는 이런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믿는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사명이 무엇인지 바울로는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도 바울로처럼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믿고 순종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부르셨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은혜 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 과거를 돌아보면, 온통 죄밖에 없다. 부끄러운 수치감이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의 저를 생각해 보면, 온통 죄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은혜 받고 난 이후에는, 죄를 안 지었나요? 죄를 지었습니다. 이렇게 저를 부끄럽게 하는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능력이 있고, 열심히 있어서가 아니다. 문제가 있고, 상처가 있고, 여러 가지 잘못이 있지만, 우리를 만나 주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축복해주시고, 거기다 사명까지 주셨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도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도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는 내가 받은 은혜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도록, 보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사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함이, 사도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셨다면, 그 은혜를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로, 예수님으로부터 힘을 공급받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을 살려면, 내 신분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창조주 하느님이 “넌 내 거야!”해 주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영광인데, 왜 자신이 없습니까? 예수님을 진짜 안다면, 주눅들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일하시기 바랍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돈이 좋습니다. 그런데 돈을 위해 살면, 반드시 부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 때문에 감격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의 소유가 된 감격과 은혜를 먼저 누린 다음에,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만나지 못하고, 일을 하려고 하니까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된, 감격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아들아 딸아 말씀보고 기도해라. 너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다.”고 말해 줘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감격을 누리게 해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살아가라고 격려해 주는 부모. 자녀를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기도할 기회를 줍니다. 우리 교회도, 성도들도 모두 다 하느님의 것입니다. 주님 마음대로 사용하심이, 우리의 감격이고 기쁨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거룩한 백성 즉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거룩하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됩니다.. 성도는 하느님께 헌신되어 구별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다른 법칙을 가지고,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 안에만 모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성도이어야 합니다. 세상 부모들은 대학을 위해서라면 주일에도 공부를 하라고 말하지만, 성도인 부모는 세상의 아버지, 어머니들과 달라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로 인해 내게 불이익이 있고,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느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현대 사회는 문화가 지배합니다. 문화가 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만 보아도 웰빙이라고 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먹는 것 웰빙, 옷도 웰빙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서 세상을 이끌면 엄청난 능력을 나타내며 복음이 증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로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고자 애를 썼습니다. 당시 로마는 경제 정치 예술 등의 모든 부분의 중심이었습니다. 세계에서 로마로 모여들었습니다. 바울로는 이러한 로마에 복음을 증거하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이 세계 각지로 전파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를 그렇게 가고자 했던 겁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재판을 받기 위해서 로마에 가고 전도를 합니다만은 로마서를 보면 로마에 대한 열정이 있는데 길이 막혀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15장). 바울로는 할 수 없이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이 로마서입니다.
우리도 바울로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예수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교회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세나 직장에서 일하는 자세를 같이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도 충성하고 사회에서도 충성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살면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갖다 줍니다. 교인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신뢰하며 화평한 삶을 살아가는 문화를 형성하면 세상 사람들이 세속문화에서 맛볼 수 없었던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선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바울로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로는 자신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로는 학문적으로 태생적으로나 지위적으로나 보통의 사람이 아닙니다.
순수한 유대인 혈통에서 태어났고, 바리사이파 사람으로 정통 유대교에서 양육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요즘으로 말하면 엘리트 코스를 밟을 정도로 똑똑한 인재였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종은 자신보다 오직 주인만 드러나게 합니다. 바울로는 자신의 지위나 능력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주인이신 하느님을 드러냈습니다.
우리가 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기독교 문화를 만들면서 특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가면 자신을 드러낼 수가 있습니다. 우쭐한 마음.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 같고, 모든 것이 나의 힘과 노력으로 했다고 교만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로의 자세를 가지면 언제 어디서나 어느 자리에 올라간다고 할지라도 종의 자세로 하느님을 나타낼 수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양교회의 교인들 특히 아이들과 청년들이 문화를 이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리 아이들이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감당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자녀들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부터 여러분이 섬기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대로 기독교 문화를 만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정신으로, 종의 자세를 가지고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역사하실 겁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세요. 기독교문화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 의의 도구로 쓰임받는 도구가 되도록 역사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기도와 헌신과 노력으로 한 생명과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이 문화선교의 자리에 이르고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서 하느님으로부터 이러한 칭찬과 축복과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으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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