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2일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해서 절정에 달한 기나긴 겨울밤을 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침 일찍 잠을 깨는 날이 많아지니 일부러 저녁 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서각을 하면서 잠을 청해야 그나마 새벽 추위를 피해서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는 날들이다. 공부방으로 사용하는 곳인 저녁에 불을 지펴놓은 구들방은 아침에는 대개 식어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보거나 무엇을 하려는 것을, 저녁에 대신하면서 긴 겨울밤을 지내고 있다. 동지 절기를 맞이하면서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워진다는 말이 새삼스레 실감하고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겨울추위가 기승을 부릴 테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오히려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점점 짧아지던 낮이 이제부터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태양이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북반구에 더 많은 빛을 주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태양은 짧아지기 시작했으니 겨울추위가 다가오는 있는 것인가? 해마다 이즈음에 성탄절 축제일을 맞이하는데 그 유래를 살펴보면 크리스마스와 동지는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가장 밤이 길어지는, 다시 말하면 음(陰)이 극성(極盛)을 부리는 동지(冬至)와 세상의 빛으로 이 세상에 탄생했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릴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제정된 유래를 살펴보면 동지 절기의 유래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지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살을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그런데 이 동지 절기에 대한 사상은 동양이나 서양에서 거의 유사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넘나들며 문화를 교류하게 했던 알렉산드르 제국이나 비잔틴 제국 그리고 징키스칸의 몽고제국을 통해서 동지에 대한 사상도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고 남았을 것이다. 동지에 대한 이런 문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졌을 고대 로마제국은 서기 313년 콘스탄티누스 왕에 이르러서 이스라엘이라는 변방의 작은 나라에서 태생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선포하기에 이른다. 로마제국이라는 막강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민중들의 삶 속에 깊숙하게 토착화되는 과정 속에서 크리스마스 축제일도 제정되기에 이른다. 본래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은 12월 25일이 아니라고 한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교도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던 봄의 광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동지(冬至)의 축일, 다시 말하면 태양숭배의 습속을 이용하여 그리스도 탄생을 기념한 것으로 보인다. 12월 25일은 동지가 지난 다음으로 태양이 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특히 기념되고 있었는데 그리스도를 구원의 빛으로 믿었던 사상과 일치되기에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제정하고 공포하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도 결국 우리 동양인들이 중시하는 동지(冬至)라는 절기를 기반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처럼 화석 연료를 마음껏 상용하여 난방을 하거나 빛을 밝히지 못하는 자연그대로의 삶 속에서 지냈던 시절 혹독한 겨울추위가 극에 이르는 동지를 지내기란 정말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태양이 비추는 시간이 짧아지고 밤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도 우울해지는 기분이었으리라.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꾸어보면 음이 극성을 부리는 시기가 지나면 양의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절망이라는 어둠에 사로잡혀갈 즈음에 어김없이 꿈틀대며 나타나는 한 줄기 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것이 동지다. 긴 겨울 동안 죽어버린 듯한 땅 속의 식물들이 봄이 되면 힘찬 용솟음으로 새로운 생명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크리스마스는 이처럼 삶을 영위하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온갖 절망의 심연에 사로잡혀 살아가려는 이들에게 결코 그 절망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축제일이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축제일을 전후해서 죽음에 이르는 절망 같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빛을 상징하려고 거리나 건물에는 온갖 화려한 빛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작성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