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실한 성공회 신자는 독실하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독실하지 않다’기 보다 ‘독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난 그냥 독실하지 않다고 표현하려고 한다.
아무튼 독실한 성공회 신자는 오히려 독실하지 않다.
모순된 표현 같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성공회는 그렇다.
아득바득 무엇을 구하지도 않고,
고통 또한 잘 견디며
그러면서도 잘 웃고
남에게는 이렇다 저렇다 강요하지 않는다.
아주 독실한 분도
그저 그렇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맹맹할 뿐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노자가 성인은 그렇게 맹맹할 뿐이라는 대목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난 나름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그러다가 무슨 인연에서인지 성공회 교회에 우리 가족 스스로가 찾아왔다.
그래서 나름은 독실한? 성공회 신자가 되려고 했었나보다.
하지만 성공회의 그런 특성 때문에 적응하기 참 힘들었다.
어떤 땐 저 사람들이 정말 믿는 사람들이 맞나 싶기도 했다.
아마 성공회 신자라면 누구든 당시 내 심정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지금 내가 하는 독실하지 않다는 표현에는 다분히 칭찬의 요소가 많다.
그러나 꼭 칭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실하지 않다고 말하는 데는
독실함이라고 하는 외형을 ‘초월하는’ 독실하지 않음도 있지만
독실함에 ‘미치지 못하는’ 독실하지 않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할 것은,
성공회 내에서는
누가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인지
누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인지조차 좀처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너, 나 없이 모두가 다 그냥 그렇게 다함께 어울린다.
그것 또한 성공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소위 독실한 분들도 많이 보인다.
개신교적인 경향이 물씬 나는 분들이 그런 분들인데,
방언을 하고
아주 열심히 일을 하며
열열이 기도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개신교신자와 다른 점은
독실함을 뛰어넘는 그 어떤 모습이 더 있음을 ‘인정하는’ 독실함이라는 점이다.
나도 이제 독실한? 성공회 신자가 되려고 한다.
아니, 그렇게 되고 싶다...
외형상 독실해 보이지 않는,
그래서 독실함을 굳이 따지지 않고
그저 모두와 다 함께 어울리는
그런 성공회 신자 말이다.
和光同塵[화광동진: 빛을 부드럽게 하고(숨기고) 먼지와 하나가 되라]
이라고 했던가
'먼지'야말로 진정한 하느님이다.....
* 성공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에서 퍼온 글.. 글쓴이 : 산소리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작성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