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에서는 이방인 출신의 한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랑 가득하시다는 분께서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않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존심 상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순간적으로“참, 내 정말로 치사해서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는다 .”하며 그 자리를 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지 않지요. 예수님만이 마귀들린 딸을 고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끝까지 매달립니다. 그 결과, 이 여인은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자신의 무너진 자존심을 억울해 하면서 화를 내고 그냥 돌아갔다면 사랑하는 딸의 병을 고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수 있습니다. ‘나’를 조금만 희생한다면 더 큰 것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실 내 체면이 가장 중요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체면까지도 버릴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요?
TV를 통해 지방의 한가게에서는 "주인없는 가게"에 대해서 본적이 있습니다 그 가게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고 합니다. '필요한만큼 가져가시고 돈은 양심껏 내고(물론 가격은 정해져 있답니다) 가시고, 빌리는 물건은 남을위해 깨끗이 돌려 보시고 제자리에 꼭 가져다 주세요. 이 운영의 일부 수익금은 어려운 분을 위해 쓰여집니다 ' 라고 쒸어져 있답니다. 자신은 필요한 것이 해결되었다면서 가게에 돈을 내지 않고 그냥 자기 갈 길을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한 빌려간 것을 다시 회수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목마름은 해결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다시는 충분한 이득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음 사람도 공익을 얻지 못해서 큰 고통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이 가게는 처음엔 눈치때문에 80~90%는 잘 이어 나가다 결국 문을 닫고 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 생각은 이는 진정한 믿음과 더 큰 사랑의 상실 이라 결론 내립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위한 배려 깊은 사랑의 실천. 남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 셈을 해주시니까요. 하지만 우리들의 세상을 잘 보면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너무나 많이 갖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기준은 자신이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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