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기도
오늘 복음은 “주의 기도” 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기독교회는 구교든 신교든 모두 이 기도를 주일예배를 포함해서 모든 공예배에서 바칩니다. 어릴 때 어두운 길을 가거나 무서운 생각이 들 때 이 기도를 많이 바쳤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주의 기도는 기독교 신자에게는 가장 친숙한 기도 일 겁니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 기도는 주님이 드려야 할 기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 제자들이 드리도록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입니다. ‘주님이 친히’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주의 기도란 명칭이 붙은 것 같은데, 사실은 제자들이 드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제자들의 기도”가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같으신 분이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직접 하셔도 되니까 기도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왜 기도하셨을까? 하는 물음이 제기 될 수도 있는데, 그런 질문은 기도란 하느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이란 오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느님과의 교제 또는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지상 사역 중에 늘 하늘 아버지와 교통이 필요했겠죠. 어떤 성경에는 “하늘나라의 어전회의” 라고 합니다. 오늘 창세기의 말씀에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놓고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를 생각해 보면, 기도의 성격이 더 잘 이해될 겁니다. 즉, 우리가 기도를 위해 무릎 꿇는 자리는 사실 엄위하시고 거룩하신 하느님 앞으로 나가는 영광된 자리인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앞부분은 하느님의 이름, 나라, 뜻에 대한 내용이고 후반부는 우리 삶을 위해 양식과 죄, 유혹과 흉악에 대한 내용입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여기도 하느님을 향한 수직선과 우리를 향한 수평선이 만나는 것을 보실 겁니다. 주기도문의 십자가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가 제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 기도의 내용도 많이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과 그 분의 나라,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그 것을 위해 헌신하며 인류를 위한 양식과 용서와 화해, 죄와 유혹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 악으로 부터의 보호와 인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