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오늘 복음은 우리가 익히 알던 성서의 가르침과 비교하면 조금 헷갈립니다. 오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청지기의 행동은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옳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가 위기가 닥치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의 빚을 임의로 탕감해 주며 환심을 삽니다. 명백히 배임내지 횡령죄가 적용될 만한 행위이고 주인의 재산을 대놓고 낭비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도, 에피소드의 주인은 그런 청지기의 행위를 칭찬합니다. 그리고 성서의 나레이션도 이를 지지하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가르침은 우리도 각자 속한 직장에서 오너나 상사를 속여먹고 그들의 눈을 피해 거래처 사람들과 협잡을 하는 것을 정당화한다고 오판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전체 속에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결코 저런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현실의 세상에 대입하면 올바른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짐작하시는 대로 이 이야기는 하늘나라의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부자주인에 하느님을 대입하면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청지기는 우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은 달란트의 비유에서 보듯 하느님께 받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칭찬하는 행위는 바로 주인의 것-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선 빚을 탕감해 주는데, 용서와 관련해서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과 죄의 빚을 용서로 탕감해 주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이야기에서 주인의 칭찬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모스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짓밟고 오직 자신의 잇속만 밝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이런 행위들을 잊지 않겠다고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반면 디모데서에는 . 7절 밖에 안되는 짧은 구절에 “모든 사람”이 4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주님!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사도바울의 사역과 전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십자가라는 데는 거의 모든 크리스천이 동의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것 보다 이웃에 대한 것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우리 대부분이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잘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는 자주 실패하기 때문 인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이웃에 대한 것을 잘하는 종을 하느님은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