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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3주일(나해)

작성일 : 2018-11-18       클릭 : 69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첨부파일
20181118(연중 33주일).hwp

고난은 인간 성숙을 위한 하느님의 빚음의 손길, 영광에 이르는 관문으로 고난의 절정인 죽음은 하느님께서 새로운 천지창조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취한 제자들의 말에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2;19)는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를 외적 성전이 아닌 심연의 성전으로 돌 때, 우리가 헐어야할 성전이 무엇인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는 새로운 세계, 질서, 창조의 시작입니다. 곤충, 갑각류 같은 절지동물이 성장과정 중 외피(外皮)를 벗는 탈피처럼, 외적인 것이 무너짐으로 그 안에 감춰졌던 본질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성전파괴의 궁극의 목적입니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내가 그리스도다!'떠들어대도 속지마라."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하느님 상, 자기 상, 자기 공로와 의로움에 속고 살아갑니다. 자기만의 잣대, 논리, 선지식, 왜곡된 자기 신념에 속아 삽니다. 그것을 깨지 않으면 새로운 생명으로, 혹은 성숙에로 나갈 수 없고, 안주하게 되면 퇴보, 퇴행만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잡고 있는 것을 놓는 것이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워내는 일, 깨어지고 낮아져서 티끌로 돌아가서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침의 자리가 회심의 여정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17;20-21) 여기저기라는 장소에 있지 않고, 밖에 있지 않고, 생각과 논리에 있지 않고 다만 각자의 심연, 하느님의 성령에 거하시는 마음 중심에 하느님 나라는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느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입고 우리로 살아가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자신의 관점, 가치관, 하느님에 대한 상을 깰 때만 성숙에로 나갈 수 있습니다. 분명 이러한 철저하게 자신이 깨어지고, 자기 신념과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상실하는 자리는 고난의 자리, 고통의 순간입니다. 상실은 그 안에서 값진 진주를 발견할 때 보상됩니다. 바울은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려는 것입니다.’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깨고 무너뜨리는 것에는 믿음의 확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11;13)는 말씀을 붙잡고 자신을 깨고, 자신에게 유익했던 것들을 비워냄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지성에서 감성에로, 지식에서 하느님의 지혜, 곧 감동의 삶이 되어 새로운 천지창조가 이루어져 새 하늘 새 땅을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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