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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6일 디모데오와 디도

작성일 : 2015-09-05       클릭 : 389     추천 : 0

작성자 약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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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오와 디도(바울로의 동반자)

 

디모데오와 디도는 바울 사도에게 안수를 받은 제자들로서 바울 사도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다. 자애로운 성격의 디모데는 바울 사도의 '참된 믿음의 아들', '협력자', '절친한 친구'라고 불리었으며 디도는 교회 안의 많은 문제들을 잘 해결한 '영적인 협상가'였다.

소아시아 리스트라에서 유대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디모데오는 바울의 전도 여행을 충실히 도운 충실한 제자이며 협조자였다. 디모데오는 다른 유대인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할례를 받은 후 바울의 2차선교 여행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디모데오는 데살로니아에서 박해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격려하였으며, 마케도니아와 고린도에 가서 바울의 가르침을 잘 따르라고 권고 하였다. 그 후 에페소로 가서 그곳의 초대 주교로 봉직하였다.

양친이 그리스인 사이에서 태어난 디도는 바울에 의해 개종을 하였다. 디도는 바울을 따라 크레타섬에 전도를 갔다가 나중에 교회를 조직하기 위해 그 곳에 남아 있었다(디도 1:5). 그 후 디도는 크레타섬에서 주교로 여생을 보내고 93세에 별세했다고 한다. 디도는 바울사도에게 영적인 아들과 같은 인물로서 새로운 교회를 조직하고, 교회 안의 불화를 해소시키는 데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교회는 디모데오와 디도, 두 사람 모두 그들의 헌신과 믿음을 공경하며, 바울의 동업자로서 그들을 바울의 회심 다음 날 기념한다.



요한 크리소스톰의 설교로부터

왜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냈을까? 그가 전에 보낸 편지에는 곧 만나서 보길 바란다.’ 라고 썼지만 이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직접 찾아가는 대신 편지로써 위안을 준다. 아마 디모데는 바울의 부재를 슬프게 여기고, 그에게 주어진 정부의 일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교회라는 배의 키를 잡고 방향을 조절해야 하는 위치에 놓이면, 그들이 부딪힐 임무의 파도 때문에 압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있었던 일이며, 아직 땅이 경작되지 않았을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무관심하고 적대적이었으며, 또한 유대인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도 마주쳐야 했었다.

바울은 디모데를 그냥 아들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아들로 불렀다. 바울은 갈라디아 인들을 그의 자녀로 부르며, 동시에 그들을 낳은 듯이 챙기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디모데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얼마나 디모데를 특별히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이 자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치를 인정할 때 나온다. 우리가 낳은 자식은 그들의 가치뿐만 아닌 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의 자녀가 그렇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의 본질적인 가치가 아니면 불가능 하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 편애하지 않는 바울에게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의 손이 닿음으로 너의 안에 있는 하느님의 선물을 되살리라고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당시 바울이 의기소침하고 낙담해 있는 디모데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짐작 할 수 있다. 바울의 말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의 선물을 일으키려면 큰 열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불이 연료를 필요로 하듯이, 은혜도 우리의 기쁨과 흔쾌한 동의가 있어야 열렬해진다. 하느님의 은혜의 불을 피우거나 끄는 힘은 우리 안에 있다. 그리하여 바울이 우리를 책망한 것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 성령의 불은 태만과 경솔함으로 꺼지지만, 주의하고 근면하여 그 불을 지켜야 한다.

바울은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느님은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않으셨고, 다만 힘과 사랑과 자기 훈련의 영을 주셨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영은 받지 않았고, 다만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들만 받았다. 수 많은 전쟁의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영에 사로 잡혀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를 사랑하는 힘과 영을 주셨다.

이것은 은혜로 된 일이지만, 은혜로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도 관여했다. 우리로 하여금 아빠 아버지!” 라고 부르짖게 하는 그 성령이 우리를 하느님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하사 서로를 사랑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 힘에서,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 두려움과 배신의 의심만큼 사랑을 분해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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