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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켄터베리의 어거스틴

작성일 : 2015-09-05       클릭 : 392     추천 : 0

작성자 약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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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베리의 어거스틴(켄터베리의 초대주교, 선교사, 605)

 

성 어거스틴의 출생배경이나 교육과정 등에 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는 이탈리아의 로마(Roma) 태생으로 교황 성 대 그레고리 1세와 친분이 있었고,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성 어거스틴은 595년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듬해인 596년에 교황 성 그레고리 1세로부터 앵글로 색슨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사명을 받고 40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었다. 성 어거스틴이 선교사로 파견하게 된 이유는 590년경 베네딕토회 대수도원장 성 그레고리는 선교사로 브리타니아에 가서 앵글로 색슨족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였으나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되자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설립한 베네딕토회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인 어거스틴을 대신 파견하게 된 것이었다. 성 어거스틴 일행은 배에 예수님의 형상을 새기고, 손에는 은색 십자가를 들고 597년에 켄트왕국의 해안가 타네트(Thanet) 섬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이미 영국에 진출해 있던 선교사들과 켄트의 왕인 성 에텔베르트의 환영을 받았다. 영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왕이 된 첫 번째 왕인 에델베르트는 어거스틴 일행에게 켄터베리 동쪽에 위치해 있는 오래된 교회 건물을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에텔베르트 왕은 그 신하들과 함께 601년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복음이 영국 전토에 걸쳐 퍼져나갔다. 성 어거스틴은 캔터베리에 주교좌성당을 세우고 여기를 기점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 성 베다에 의하면 그들은 성가를 부르고, 기도하고, 대중에게 이야기하고, 전도하고, 세례를 베풀기 위해모였다고 한다. 성 어거스틴이 활발히 선교활동을 벌였지만 당시에는 아일랜드 교회와 로마 교회의 관습에 많은 차이가 있어서 어거스틴의 선교활동에 많은 장애가 있었다.

 

성 어거스틴은 프랑스의 아를레에서 영국의 대주교 서품을 받고 켄터베리를 중심으로 하는 관구를 설립하였다. 또한 도시 외곽에는 성 베드로와 바오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이 수도원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베네딕토회 수도원이다. 전도활동은 점차 확대되어 갔다. 성 어거스틴은 동부의 색슨족들을 위한 관구를 런던과 로체스터에 설립하였다. 성 어거스틴은 이방인의 성전과 관습을 파괴하기보다는 정화하고, 이교 예식과 축제를 크리스천 축제로 바꾸며, 가능한 한 지방 관습을 지속시키며 전도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성 어거스틴은 일생동안 웨일즈 지방과 영국 남서부지방의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지지를 받지 못했다. 배타심이 강한 영국사람들은 어거스틴에게 융화의 기회를 주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대주교로 인정하지도 않으려 했다. 결국 성 어거스틴은 평생을 영국의 기존교회와 통일을 모색하였으나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605(604)526일에 죽었다. 성 어거스틴이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일도 쉽지 않았으나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의지로 선교활동을 하고 교회를 설립 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성 베다의 영국의 교회사에서

에텔버트 왕은 어거스틴과 그의 일행을 그의 왕국의 중심지인 캔터베리에서 살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자유롭게 선교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어거스틴과 그의 일행은 거취를 정하자마자 교회의 기초를 세우고 사도들의 삶에 필적하는 삶을 살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기울여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들이 가르친 것들로 부터 생명에 필요한 것들만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들이 전한 것을 실천하려고 애를 썼으며, 어떠한 어려움도 기꺼이 견디어 내었다. 심지어 그들이 선포한 진리 때문에 죽어도 좋다고 까지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들 신앙생활의 순수함에 감탄하였고, 그들이 전하는 천상의 메시지의 위로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로마가 브리튼을 점령했을 때 성 마틴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은 오래된 교회가 캔터베리 동편에 있었다. 그 교회는 기독교인이었던 브리튼의 여왕이 기도를 하였던 곳이다. 여기서 수사들이 처음으로 시편을 노래하고, 기도하고, 성찬식을 거행하고, 설교하고, 세례를 주기 위해 모였다. 이러한 행위는 왕이 개종하여 그들에게 설교할 자유를 더 많이 주고, 사방에 교회를 복구하고 지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침내 왕 스스로 수사들의 순수한 삶과 그들의 기쁨에 넘치는 약속들, 그리고 많은 기적들로 증명해주는 진실들에 끌려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때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매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으며, 이교도의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로 들어왔다. 왕은 그들의 믿음과 개종에 기뻐하였지만 그 누구에게도 기독교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선생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섬김은 자유롭게 받아들여져야지 강제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일군 어거스틴이 아를레스를 방문하는 동안 교황 그레고리의 명령에 따라 그 도시의 대주교 에텔리우스에 의해 영국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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