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오스왈드(노텀부리아의 왕, 순교자, 642년)
오스왈드 성인은 605년 노섬브리아의 왕 에텔프리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오스왈드는 617년에 그의 아버지가 레드월드에게 피살되었을 때 스코틀랜드로 강제로 끌려갔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이오나(Iona)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이오나는 성인 콜룸바에 의해 복음이 퍼진 곳이다. 그 후 그의 삼촌인 에뒨 왕마저 머시아(Mercia)의 펜다 왕과 웨일스(Wales)의 왕 카드왈론에 의하여 피살되자, 633년 군대를 일으켜 카드왈론을 헥삼(Hexham) 교외의 전투에서 물리치고 634년에 노섬브리아로 돌아와 왕이 되었다.
국가를 재건하기에 앞서 오스왈드는 국민들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살게 하고자 이오나수도원에 선교사를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성 애단이 이끄는 전도단이 노섬브리아에 오게 되었다. 왕 오스왈드는 애단이 선교를 다닐 때 마다 그와 동행하며 직접 그의 통역을 도맡아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애단이 전국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도와주면서 린디스파른(Lindisfarne) 섬을 기증하고 주교좌로 삼도록 배려하였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을 많이 세웠고, 스코틀랜드에서 수도자를 이주시켜 자기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돌보게 하였다.
오스왈드는 웨식스(Wessex)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 왕 치네질스(Cynegils)의 딸인 치네부르가와 결혼하였다. 약 8년간에 걸쳐 오스왈드왕은 여러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있던 영국의 통일과 기독교 복음을 자리 잡게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스왈드왕의 이러한 업적은 이교도신을 믿고 있던 머시아의 펜다왕에게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펜다왕 오스왈등왕에게 도전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오스왈드 왕은 전쟁이 시작되자 전투에 나가기 전, 십자가를 준비해 놓고 그의 군사들을 십자가 주위에 모이게 한 뒤 밤새 기도하게 하였다. 그는 만일 이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에는 이 승리를 성 콜룸바(Columba)에게 바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642년 오스왈드는 펜다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오스왈드가 죽은 후 그의 공적이 독일과 이태리를 포함한 전 유럽 전역에서 높이 평가되어 성인추대를 받게 되었다.
또한 성 베다가 전해주는 기록에 의하면 ‘오스왈드는 비록 임금이었으나 겸손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외모도 잘생겼으나 그의 품성도 역시 아름다웠다’고 한다.
성 베다의 ‘영국교회와 국민의 역사이야기’로부터
오스왈드 왕이 이교도와 전투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거룩한 십자가 싸인을 준비해 놓고, 그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뜻에 맞는 도움을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하였습니다. 그 장소는 오늘날도 중요한 장소로 지정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소문이 있습니다. 급하게 십자가를 만들고, 그 십자가를 세우기 위해 구덩이를 팠습니다. 열렬한 신앙심을 가진 경건한 왕은 십자가를 잡고 몸소 십자가를 적절한 위치에 놓고, 군인들이 십자가가 흔들리지 않게 땅 표면을 다질 때 까지 두 손으로 똑바로 잡고 있었답니다. 십자가가 세워지자 그는 소리를 높여 그의 군사들을 불렀습니다.;‘다같이 무릎을 꿇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이 그의 자비로 우리 적의 오만한 잔행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진실로 기도합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우리국가를 보호하려는 정당한 명분으로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군인들이 그가 명령한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이 오자 적을 향해서 진격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가치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왕이 기도했던 그 장소는 왕의 믿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배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수여된 ‘하늘의 벌판( heavenly field)’으로 알려진 이곳은 하늘의 징조가 세워지고, 하늘의 승리를 얻고 하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타내는, 미래 사건에 대한 확고한 예언이었습니다. 이 장소는 로마인들이 세운 바다와 바다를 잇는 벽의 북쪽에 있습니다.
오스왈드 왕은 애단 주교에 의해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교육하였습니다. 왕과 그의 백성들은 그 결과 그의 조상들은 알지 못했던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창조자인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해 그들이 소유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큰 땅의 왕국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오스왈드는 점차적으로 네 개의 언어를 말하는 브리튼지역(브리튼과, 피트족, 아일랜드족) 에 있는 사람들을 그의 왕권아래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땅을 지배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항상 놀라우리 만치 가난한 사람들과 이방인들에게 겸손하고 친절하고 관대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의 선조 에드윈을 죽인 이교도의 왕들과 같은 이교도인 머시안에 대항하여 싸우다 오스웨스트리(oswestry)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맹렬하게 전투를 하다가 쓰러졌다. 그는 642년 8월5일 38살의 나이에 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