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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키프리안

작성일 : 2015-09-05       클릭 : 113     추천 : 0

작성자 약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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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리안 (카르타고의 주교, 순교자, 258)

 

키프리안(Caecilius Cyprianus)은 약 200년경에 카르타고의 유복한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수사학과 웅변에 뛰어난 수사학자이자 법률가였고 교사였다. 그의 본명은 키프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였다. 그는 246년경, 그의 나이 46세 때 속세의 불의와 부패에 회의와 실망을 느끼던 중 노사제인 코일리키우스(Coelicius)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후 그는 사제품을 받았고, 그가 기독교인이 된지 2년 만인 248년 초에 카르타고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249년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에 키프리안은 피신해 있었지만 피신해 있는 동안 편지를 보내 자기 교구를 계속 지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피신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자 251년에 교구로 돌아왔다.

 

카르타고로 돌아온 후 키프리안은 박해기간동안 배교했던 사람들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편지 등을 통해 그가 교구를 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교구민들이 박해 동안에 배교하였고, 노바티안 분파가 처음에는 배교한 신자들에게 아무런 회개 행위도 요구하지 않고 교회로 받아들이다가, 2513월 교황으로 선출된 성 코르넬리우스(Cornelius, 916)가 배교자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베풀자, 노바티아누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배교자들은 영원히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배타적인 엄격주의자로 돌변하였다. 이에 키프리안은 중립적인 노선을 지지하면서 노바티안 분파에 반대하였다. 그 후 얼마 뒤에 키프리안과 아프리카의 다른 주교들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Stephanus I, 82)와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황은 이단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이 베푼 세례도 유효하다고 인정한 반면, 그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키프리안은 지역 주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르타고에서 주교회의를 열고 이단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재세례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키프리안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즈음 키프리안은 "가톨릭교회 일치"(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배교자들에 관하여"(De lapsis)를 저술하고 배포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지 않고 교회 안에 일치를 이루도록 촉구하였다.

 

발레리안의 통치기인 252-254년 사이에 아프리카 지역에 몸서리치는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키프리안은 총력을 기울여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그를 반대하는 이들과 신자들은 흑사병을 그리스도교와 키프리안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며 박해의 빌미로 삼았다. 키프리안은 이런 사람들의 낭설을 반박하고 위로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데메트리아누스에게"(Ad Demetrianum)"죽음에 대하여"(De mortalitate)라는 책을 썼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또 모든 주교와 사제와 부제들이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 예식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키프리안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지방 총독인 파테르누스에 의하여 카르타고에서 50마일 거리에 있는 쿠루비스로 유배되었다. 또 다음해에는 모든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다. 키프리안은 새 총독인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소환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끝까지 이교의 신에게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2589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되었다. 그는 교회, 사목, 성서, 성사 그리고 배교자 문제에 관하여 박해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13편의 저서와 65편의 서간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북아프리카 교회 최초의 순교자 감독이었던 키프리안은 심문당할 때나 처형당할 때에도 인격의 고매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키프리안의 저서들은 그가 지극히 존경하던 테르툴리아누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방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요, 신학자며 저술가로서 어거스틴(354430)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키프리안이 도나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내가 당신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나는 내 생각의 대부분이 평범하다는 것과, 나의 이해력이 참으로 얕다는 것을 깨달았다네. 나는 수확을 많이 거두지 못했네. 나는 자네의 마음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기위해 거의 한 일이 없네. 만약 어떤 사람이 법정에 있거나, 또는 공공모임이나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자 한다면, 헙헙하고 사치스러운 웅변가가가 적당할 것이네. 그러나 우리의 주인, 하느님의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가 말하는 것의 확실한 진실은 다른 사람에게 웅변이 아닌 우리 삶의 본질을 가지고 전달할 것이네. 그리고 황홀하게 하기보다는 설득력있게 이러한 말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리고 화려한 문체로 군중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을 진실로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기 위해 심플하게 할 것이네. 배운 것이라기보다는 진심으로 느낀 것을 받아들이게 하고, 오랜 도제기간의 과정을 통해 애써서 축적된 것이 아니라 은총의 갑작스러운 활동에 의해 단숨에 빨아드린 것을 받아들이게 할 것이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어둠속에 누워 밤의 심연속에서 이 소란스러운 세상의 움직임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었네. 앞으로 택해야 할 인생진로의 불확실함과 나의 실제 삶의 무지함, 그리고 진리의 빛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네. 그 당시, 어떤 사람에게는 세례의 치유의 물속에 잠김으로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나는 내가 이끌었던 삶 때문에 나의 구원을 위해 약속한 신의 자비가 무엇인지 믿기가 어려운 것처럼 생각되었다네. 물리적으로 같은 사람을 통하여 마음과 정신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가 어려웠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었지. 어떤 변화가 우리 인간 본성의 본질적인 단단함을 한순간에 벗겨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위대한가? 해를 거듭하면 습득된, 우리 안에 변함없이 깊게 뿌리박고 있는 나쁜 습관들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향연이나 지나친 환대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데, 어떻게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훈련할 수 있을까? 만약 어떤 사람이 금과 자색으로 과시하는 듯이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에 익숙해져 있다면, 어떻게 그들이 평범한 옷을 입기 위해 그것들을 버릴 수 있을까? 관리직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명의 개인의 삶으로 쉽게 물러날 수 없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지지와 추앙을 받는 사람은 홀로 있는 것을 체벌로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외적인 유혹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잡아매두지 않는 한 우리는 술과, 자만으로 우쭐해지고, 분노하고, 탐욕에 몰두하고, 잔인함을 즐기고, 야망에 휘둘리고, 욕망의 먹이가 되는데 아주 쉽게 넘어갈 것이다.

이것들이 내가 자주하는 생각들이네. 나는 도망치기가 불가능하다고 보여 졌던 내 삶의 과거의 오류에 의해 갇혀있었네. 나는 금식에 매달리며 나의 죄에게 굴복했다네. 때문에 나는 마치 그것들이 내 집에 영원히 거주할 것처럼 간주하면서 나의 결점을 눈감아 주고 그리고 개선할 여지를 자포자기 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생명을 주는 물세례를 받은 후에 나는 구조 되었네. 그리고 내 과거의 얼룩들을 씻었다네. 그리고 위로부터 오는 빛과 평온함과 순수함이 깨끗해지고 회복된 마음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네. 그리고 하늘의 영이 내 안에서 숨을 쉰 이후부터 나는 다시 태어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네. 그때 놀랍게도 내가 전에 의심하였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분명해졌다네. 숨겨져 있던 것들이 드러났다네. 어둠속에 있던 것들이 명료하게 이해되었다네. 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가능하게 보여졌네. 죄를 범한 육체의 내안에 있는 것들이, 나는 지금 세속적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네. 하느님에 의해 내 속에서 나를 살아있게 만든 것들이 지금 거룩한 영에 의해 활기차게 되었다네.

모든 우리의 능력은 하느님에게 속해 있다네. 나는 반복하네.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네.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는 생명과 힘의 선물을 받았네.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에 의해,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영원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네. 그러나 우리의 양심의 안내자로 두려움을 허락했다네. 왜냐하면 그의 크신 자비 안에서 은총을 풍성하게 우리의 마음에 불어넣어주는 주님이 감사한 마음의 환대에 의해 항상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해서, 적어도 우리가 받았던 확신이 우리를 이끌어 부주의하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오랜 적들이 다시 우리위에 기어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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