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에드워드 (영국왕, 고백자, 1066년)
에드워드는 1002년 에텔레드 왕과 왕후 엠마의 아들로 잉글랜드의 이슬립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렸을 때, 덴마크 군이 영국에 침입해 왕의 일족을 추방하고, 교회와 수도원을 불사르며 약탈을 가행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를 학살하며 국민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래서 에드워드는 어머니와 더불어 어머니 고향인 프랑스의 노르만디에 피신하여 거기에서 자랐다. 신심이 두터운 어머니의 영향으로 왕자의 어려서부터 경건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장하였다. 부친인 국왕이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안 되어 영국 국민은 덴마크의 학정에 총궐기해 그들을 소탕하고 1042년 예수 부활 대축일 에드워드를 국왕으로 모셨다.
에드워드는 정의와 평화로 그의 나라를 다스렸으며, 전쟁을 피하고, 믿음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파괴된 교회와 수도원을 복구하고, 빈민 고아들의 구호사업을 추진하고, 국민의 생활안정을 위해 감세를 감행하였으며, 방문자들을 환대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가 성인으로 추대 받게 된 것은 정치적인 그의 행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헌신적인 신앙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것에 있다. 그는 금욕생활을 원했으나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왕후와 합의 하에 평생토록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오누이처럼 지냈다 한다.
에드워드가 노르만디에 피신하고 있을 때, 에드워드는 하느님께서 다시 조국을 회복시키고 자신을 왕위에 올려 주시면 꼭 로마를 순례할 것을 서원했는데, 그 서약대로 로마로 출발하려 했다. 그러나 국정이 안정되지 않아 그가 떠나는 것이 무책임한 일임을 깨닫고, 그가 로마에 가는 대신에 성 베드로에게 바칠 수도원을 테임즈 강가에 있는 쏘니 아일랜드에 대수도원을 짓도록 하였다. 그 수도원은 15년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그것이 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이때부터 왕실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에드워드는 1066년 1월 5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162년 10월 13일에 웨스트민스터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이날을 그의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성 베르틴 수사에 의한 ‘웨스트민스터에 안치된 에드워드와의 생애’
1065년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이 가까워졌을 때, 하느님의 집에 대한 열정이 격하게 왕 에드워드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리고 하늘의 왕과 그의 새 신부의 결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순수함이 그를 고무시켰다. 그는 그 자신 안에 감추어져 있는 열정을 발견하였다. 그래서사도들의 왕자 성 베드로에게 바쳐질 교회의 빌딩이 웨스트민스터에 높게 세워지는 동안에, 그 영광스러 왕은 이 중요한 봉헌식을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몰두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의 죽음의 시간이 다가옴을 깨닫고, 한계에 도달하기 전에 그의 선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하여 서둘렀다.
주님탄생의 날인 그 시작에, 이 위대한 봉헌의 소식을 알리고자 모인 왕정의 사람들의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축제의 기쁨을 더했다. 그러나 해산 중에 있는 성모 마리아가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음울해 있는 사람들에게 천상의 영광의 빛을 주고,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영원하신 왕을 진통 없이 낳았던 바로 그날 밤에, 그 영광스러운 왕 에드워드는 찌뿌드드한 기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왕궁에서의 그날의 기쁨이 새로운 불행으로 방해를 받았다. 그 성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정신력으로 그의 병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3일 동안 그는 침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축제의 옷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심한 복통은 없었지만, 참을 수 없는 허약함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구경꾼들을 활기찬 얼굴로 대했다. 그러나 연회가 끝난 후에 그는 사적인 내부의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매일 심해지는 고통을 인내심으로 견뎠다. 여왕과 그를 지키는 가까운 봉신들만이 앞으로 닥칠 슬픔에 젖어 거기에 있었다. 그 식이 거행되던 날, 신앙심이 두텁고, 죄 없고, 사랑스러운 사람의 축복받은 순교가 왔다. 그 훌륭한 왕자는 식을 거행하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헌정식을 서두르고, 다른 시간으로 그것을 미루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의 병이 죽음에 까지 이르렀을 때, 그의 사람들이 서서 통렬히 울고 있었다. 왕 에드워드는 말했다. ‘울지 마시오, 나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에게 중재해 주시고, 내가 주님에게 갈 수 있도록 나를 떠나게 해 주시오.’(그때 그는 마지막 말을 그의 발치에 앉아 있는 여왕, 에디스에게 남겼다.: ‘하느님의 은총이 돌봄을 열성적으로 한 나의 부인에게 함께 하기를.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헌신적으로 보살폈고, 사랑스러운 딸처럼 언제나 내 곁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관이며 아내의 오빠인 헤로드에게 손을 뻗으며 ‘나는 이 여인과 나라의 모든 것을 당신의 보호에 맡깁니다. .... 그리고 나를 매장할 무덤은 민스터에 준비해 주시오. 나는 당신에게 나의 죽음을 숨기지 말고 신속하게 모든 부서에 알리어, 믿음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 나를 위해 자비로운 하느님에게 빌어주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곧 그는 슬픔을 멈추지 못하는 여왕을 위로하였다. 그녀의 현재의 슬픔을 완화하기 위하여, ‘두려워 마시오’‘나는 지금 죽지 않을 것이오. 하느님의 자비에 의해 나의 힘이 다시 생길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그가 그 자신을 현혹한 것이 아니라, 그는 죽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의 마지막 시간에 했던 말과 같이 그는 하늘의 삶의 테이블로부터 노자 성체를 받았다. 1월4일 날 그의 창조자 하느님에게 그의 영혼을 내주었다. 그들은 그의 왕궁의 집으로부터 하느님의 집으로 그 성자의 유해를 날랐다. 그리고 기도와 탄식과 찬양을 그 날과 다음 날 밤까지 드렸다. 그리고 사도 성 베드로의 제단 앞에서, 국민의 눈물로 씻겨 진 그의 몸은 하느님의 판단아래 누워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