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5일
아빌라의 데레사(1592년)
가르멜 수녀회의 개혁자요 교회 학자란 칭호를 받았을 만큼 저술가로서 유명한 데레사 성녀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아빌라의 상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귀족으로 자녀들을 모두 가톨릭 전신에 입각하여 교육시켰다. 데레사는 독서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네 살 위인 오빠 로드리고와 같이 성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순교자들의 장렬한 죽음을 읽고 감동한 데레사는 자기도 순교하기로 결심하고, 오빠를 설득시켜 아프리카로 가출한 적도 있었지만 즉시 발각되어 되돌아 온 적도 있었는데 그때 데레사의 나이 7세 때였다.
12살 때 어머니를 잃은 데레사는 14살 때 아우구스띠노 수녀회에 데레사를 맡겨졌다. 데레사를 돌봐줄 어머니도 없고, 또 많은 사람들의 나쁜 표양 때문에 세속적으로 흘러갈까 염려한 아버지가 데레사의 교육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데레사는 수녀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21살 때 수녀가 되기 위해 까르멜 수도회에 들어갔다.
수련자가 된 그녀를 시험하기 위해 장상들은 환자수녀를 간호하는 임무를 맡겼다. 데레사는 기쁘게 환자를 간호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일을 통해 테레사는 말할 수 없는 감미로운 위로를 맛보았으며, 나중에는 자신도 돌보는 환자의 병에 걸렸으면 하고 원하게 될 정도였다. 데레사의 원대로, 데레사는 입회 후 2년 만에 중병을 얻게 되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데레사는 수녀원에서 나와 있었는데 그 동안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데레사가 어느 날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예수께서 매질을 당하시는 장면을 그린 상본을 쳐다보고 자기도 모르게 감동되어 자기의 냉담한 처지를 깊이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고, 또한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을 읽다가 자기 영혼의 한심스러운 처지를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면서 데레사는 다시 까르멜 수도원으로 들어왔다. 이때의 심정을 데레사는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라고 자서전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후로 데레사는 깊은 신앙의 신비를 체험하기 시작하였다.
테레사는 안으로는 영(마음)을 신비계로 몰입함과 동시에 밖으로는 까르멜 수도원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수녀원은 수녀가 너무 많아 수녀들 간에 경제적 불균등이 있었고, 내방객이 많고 기도 시간이 짧았으며, 규율이 느슨했다. 이에 데레사는 엄격하고 봉쇄적이고 청빈을 실천하며 묵상 기도에 전념하는 소수의 공동체로서의 초창기 수녀원으로 정신으로 수도원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또한 1562년에는 많은 반대와 오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빌라에 성 요셉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녀원은 규율이 엄하고 청빈을 지키는 ‘맨발의 수녀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후 데레사는 20년간 스페인 전역을 다니며 여자와 남자를 위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데레사의 생활신조는 “활동하고 고통당하고 사랑하는 것”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이를 생활화하였다.
데레사는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편지를 쓰고 글을 썼는데, 이 모두는 영성 문학의 고전이 되어 널리 읽혀지고 있다. 편지 내용은 요리법, 약초에 의한 치료법, 경제와 결혼을 위한 지침, 외교적인 처세술, 농담과 훈계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였다. 약초에 의한 치료법은 지금까지 신비 신학의 기초로서 존중되고 있으며, "자서전"(1565), "완덕의 길"(1573), "영혼의 성"(1577) 등이 특히 유명하다. “완덕의 길”은 영성 생활의 초보자에게, “영혼의 성”은 기도 생활을 더 깊이 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해 유용한 책이다.
데레사는 1582년 10월 4일 저녁,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임종 전에 남긴, “내 영혼아! 아무 것도 근심 말고 아무 것도 두려워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변함이 없으시다.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얻은 사람은 그 외 아무 것도 필요치 않으며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은 데레사의 주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1617년 페인 국회는 그를 스페인 주보로 선언하였으며 1622년 사후 40년 만에 시성되고 1970년 9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축일은 10월 15일이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완덕의 길' 중에서 -
마음이 기쁘거들랑 부활하신 주님을 보십시오.
무덤을 뛰쳐나오신 그 모습은 상상만 하여도 기쁨이 벅차올 것입니다.
그 휘황찬란하심! 그 아름다우심! 그 영광스러운 승리!
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고생스럽고 슬프거든 겟세마네 동산의 길로 눈을 돌리십시오.
인내 자체이신 분이심에도 괴로움을 호소하셨으니,
그 영혼이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심하셨겠습니까?
여러분에 대한 그 막중한 사랑 때문에
형틀기둥에 묶이시어 갖은 고통을 겪으시며,
갈기갈기 찢겨 나간 그 살점들을 보십시오.
모진 닦달질을 받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과 저버림을 당하셔도
누구하나 편들어 주는 이 없이 추위에 떨며 외로움 속에 던져지신 그 고통,
그 하나하나가 위안거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시는 모습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그분께 숨 쉬실 겨를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아름다우시고 자비로우시고
눈물이 흥건한 눈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을 위로하시고자 당신의 고통을 잊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위로해 드리고자 함께 가고
머리를 치켜 그분을 뵈려하기 때문입니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기도' 중에서 -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께서는 손도 발도 없습니다.
당신의 손과 발밖에는
그분께서는 당신의 눈을 통하여
이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발로 세상을 다니시며
선을 행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손으로 온 세상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손이 그분의 손이며
당신의 발이 그분의 발이며
당신의 눈이 그분의 눈이며
당신이 그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
그분께서는 손도 발도 없습니다.
당신의 손과 발밖에는
그분께서는 당신의 눈을 통하여
이 세상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몸이 없습니다.
당신의 몸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