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예루살렘의 성 야고보(주의 형제, 순교자 62년경)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지닌 사도는 둘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로서 요한의 형 야고보를 큰(大) 야고보라고 부르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고 합니다. 오늘의 성인은 알패오의 아들 소 야고보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또한 주님의 형제 야고보와 동일한 인물이며,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갈라 2,9).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로 있다가 후에 예루살렘의 첫 번째 주교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야고보는 비록 12제자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말하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타났을 때 야고보에게도 나타났었고, 바울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도 야고보가 바울을 성심성의껏 돌봐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유대인 공동체가 이방인들에게 선교하고자 할 때 야고보가 앞장서서 일하여 많은 이방인들을 기독교신앙으로 들어오게도 하였습니다.
후대에 생긴 전승에 의하면 성 야고보는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이집트에 정착해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의 오스트라키네(Ostrakine)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였는데, 그의 설교가 군중을 노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그를 신전 지붕에서 내던지고, 군중들이 곤봉과 방망이로 때려 숨져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미술에서 그의 모습은 곤봉이나 방망이를 든 모습으로 자주 그려지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유대의 이야기>
우리가 이미 말했던 바와 같이, 대사제로 추정되는 젊은 안나스는 무례하고 성미가 공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두가이파의 일원이었다. 사두개인들은 범법자를 재판하는데 있어서 유대인 중에 매우 완고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안나스가 그의 직무를 맡았을 때, 그는 그의 권위를 실행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페스터스는 이제 죽었고, 그리고 알비누스는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는 중이어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나스는 산해드린 재판관들을 소집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와 그 외 몇사람을 그들 앞에 데리고 왔다. 그는 그들을 법을 어긴 죄인으로 고발하고, 돌로 쳐서 그들을 죽이라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양심적이고 , 좀더 공평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그립바왕에게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안나스를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러한 행동이 정의롭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 중에 몇몇은 알렉산드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오고 있는 알비누스를 만나러갔다. 그리고는 그의 허락없이 안나스가 산해드린을 소집한 것은 법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설득을 당한 알비누스는 안나스에게 화가 나서 그가 한 일에 대해 벌로써 다스리라고 편지를 썼다. 아그립바왕이 겨우 3개월을 통치한 안나스로부터 대사제를 떼어 놓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대사제 담누스의 아들 예수를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