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레오나드( 은수자, 6세기)
11세기 라이프(Life)에 의하면, 레오나르는 6세기경 수도승이 되기 위해 주교직을 거부하고, 그 후 리모주 근처 노블락 (현재 생레오나르)에서 은수자가 된 프랑크족의 귀족 이였다. 그의 생애 동안, 그리고 그가 죽은 후에도 그가 행한 기적들은 영국에서만 170여개의 그를 기념 하는 교회가 세워 지는 등 유럽 전역에 추종을 확산시켰다. 영국에서의 그의 인기는 그를 죄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십자군들로 돌아가려는 열광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대 그레고리의 목회자의 보살핌에 대하여
지도자는 행실로 모범을 보임으로 그의 삶의 방식이 바른 삶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양치기의 가르침과 행동을 따르는 양들은 단지 말뿐이 아니라 본보기를 보고 더 성숙 되게 자라야 합니다. 그의 직분의 특성상, 지도자는 가장 높은 이상을 제시할 의무가 있고, 그 삶을 직접 살아야 합니다. 그의 삶의 방식이 그의 가르침을 시사할 때,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의 심장 속에 더 효과적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가 말로 장려하는 것은, 예시를 통해서 성취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너, 시온아. 높은 산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다른 말로, 천국의 것을 전하는 자들은 땅 위에 낮은 것들을 버리고 이미 정상에 올라야 합니다. 그의 삶의 진실성이 아래 있는 모두에게 들릴 수 있기에, 지도자는 높은 곳에서 그의 사람을 조금 더 순조롭게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적극적인 공감을 통해 사람들의 동료가 되어 도움을 주고, 명상을 통해 맑은 영성을 유지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연민의 마음을 통해 다른 이의 병약함을 자신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높은 명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보이는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이 균형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지도자의 뇌리는 원대한 포부에 사로잡혀 그의 이웃들의 병약을 경멸하거나, 큰 곤경에 빠져들어 하늘의 것을 추구 하는 것을 중단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천국으로 인도하고, 세 번째 하늘로 들려지기 위해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명상함으로 비록 우쭐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의 요구에 그의 마음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높은 것과 낮은 것 없이 똑같은 사랑으로 연합되었고, 성령의 힘에 사로 잡혔으며, 다른 사람의 약함을 그의 연민 안에서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약한 자는 누구이며 나는 약하지 아니한가? 다친 자는 분개함으로 불타오르지 않는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는, “유대인들이여, 내가 유대인처럼 되었도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신앙을 버림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이에게 그의 동정심을 넓혔기 때문이다. 자신을 불신자의 사람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그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자신이 받기 원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줄 수 있는지, 그의 삶과 반대의 삶을 통해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의 목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의 균형을 맞추시는 하느님 밑에서,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유혹을 자신이 느낄수록, 스스로의 유혹에서 더 쉽게 구원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