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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마틴

작성일 : 2015-09-05       클릭 : 186     추천 : 0

작성자 약수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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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마틴 (투르의 주교, 수사, 397)

 

성 마틴은 판노니아(Pannonia)교구의 사베리아(Savaria, 현재 헝가리)에서 316년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교도로 로마군 기병대의 고급장교였으며, 북부 이태리의 티시눔(Ticinum 현재 파비아 Pavia)에 주둔하고 있었다. 성 마틴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마틴이 10살쯤 되었을 때 교회에 나가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마틴은 15세 때 당시의 법에 따라 기병대에 입대를 했다. 그가 속해 있던 기병대는 전투에 참가하기 보다는 주로 행사나 의전을 위한 기병대였다고 한다. 마틴은 25년간 의무로 군 생활을 해야 했지만 2년 정도 근무하고 군에서 나오게 되었다. 마틴이 군에서 조기 제대한 이유에 대해, 독일 전쟁터에 나가서 살육을 해야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만 두었다고 하는 설도 있고, 전쟁에 참가하기 싫어서 '나는 그리스도의 군인이므로 싸울 수 없다' 면서 무기를 버리고 군인들 앞에서 시위하다 비겁한 군인으로 수감되어 불명예로 쫓겨났다는 설도 있지만, 마틴의 생애를 저술한 술피치오에 의하면, 마틴이 군대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애착과 이교도적 사상이 만연한 군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 마틴의 이야기에는 망토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마틴이 기마 군인으로 아미앵에서 지내던 337년 매우 추운 어느 겨울날 성문 앞을 말을 타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구걸을 하고 있는 한 걸인을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마틴에겐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기에 잠시 생각하던 마틴은 자신의 칼을 뽑아 자기가 두르고 있던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반쪽을 걸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꿈속에 걸인에게 나누어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가 나타나서 "로마군인, 아직 세례도 받지 않은 마틴이 이 옷을 내게 입혀 주었네라면서 마틴을 칭찬하는 환시를 체험했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마르티노가 꿈에서 깨어 일어나보니 자신이 잘라버린 반쪽짜리 망토가 다시 하나가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됐든 마틴은 이 체험 후에 세례를 받았다.

 

신비 체험 후 마틴은 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이교도였던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수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했다고 한다, 일리리쿰(Illiricum)에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이단으로 몰아 싸우다가 그들에게 붙들리어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까지 당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아리우스파이던 밀라노(Milano)의 주교로부터 추방까지 당하게 되고 그들의 표적이 되어 갈리나리아 섬으로 가서 숨어 지내다가 360년에 프랑스 투르(Tours)로 가게 된다.

 

마틴은 투르에서 푸아티에(Poitiers)주교였던 성 힐라리우스(Hilarius)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어 은수자로써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마틴은 사제품을 받고 성 힐라리우스를 도와 투르(Tours)인근에 베네딕토 리규세 수도원(Benedictine Ligugé Abbey)을 건립하였다. 이 수도원은 유럽에서 최초이며 가장 오래된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수도원은 점차 수도자가 늘어나면서 복음 선포의 중심이 되어 프랑스와 이태리 전역의 도시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371, 마틴은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성직자, 수도자들에 의해 투르의 주교가 되었다. 마틴은 주교가 되어서도 그가 지은 말무시엘 수도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나무로 만든 작은 방을 만들거나, 바위를 파낸 작은 동굴에서 기도와 묵상을 지향하는 기초 교구 시스템을 구축하고 1년에 한 번 씩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먼 거리에 있던 파리(Paris), 우통(Autun), 샥트(Chartres), 비엔나(Vienne)등지의 교구들을 돌보았다.

 

마틴이 주교로서 한 업적 중, 가장 큰 일은 이교도 신전의 파괴와 많은 이교 신자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것이었다. 특히 프리실리아니즘을 신봉하던 플리실리안파의 이단을 반대하고 그들에 저항하여 격렬히 싸웠는데, 이교도들은 마틴을 죽이려고 그의 머리위로 나무를 쓰러트리는 등, 여러 시도를 하였지만 그때마다 마틴은 보호의 기적을 받아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또 한 기록에 의하면 그는 수감자나 죄수들을 억압에서 풀어주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가 관리들을 찾아가 청을 할 경우, 그 청을 거절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관리들은 일부러 마틴을 피해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성 마틴은 397118일에 선종했는데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뒤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주님,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저는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 그는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로 프랑스 최고의 성인이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다.

 

술피치오 사베리오에 의한<성 마틴의 생애>로부터

마틴이 투르의 주교로서 그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 스스로 얼마나 독특하게 했는지 적절하게 설명하는 것은 나의 힘을 넘어서 있다. 그는 그가 성직서품을 받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 안에는 사제가 되기 전의 겸손이 그대로 있었고, 허세를 부리지 않는 옷을 입는 것도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사의 미덕과 삶을 무시함이 없이, 순수한 위엄과 정중함으로 주교로서의 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오랫동안 그는 교회에 연결된 작은 방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를 찾아오는 사람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이 방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도시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은자의 삶을 즐기기 위하여 이곳의 정확한 장소를 비밀에 붙였고,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의 암자는 한편으로는 가파른 바위가 있는 높은 산이 마주하고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계곡을 차단하는 강을 따라 한 번에 한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좁은 길만이 있는 곳이었다. 마틴은 바로 여기에 자신만을 위한 작은 오두막을 지은 것이다.

 

또한 다른 수사들도 자신들을 위한 집을 지었다. 그러나 이것들 대부분은 산 중턱에 굴을 파서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는 그들의 덕망 높은 선생의 훈련을 받고자 하는 80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다. 수도원의 관행에 따라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의 소유물을 가져서는 안 되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보관하였으며, 아무도 자신을 위해 그 무언가를 사거나 팔수도 없었다. 자기의 재능을 훈련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서는 단지 책을 베끼는 일 만 할 수 있었다. 책을 베끼는 일도 아주 어린 형제들에게 할당되었고, 연장자들은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라고 자유롭게 놔두었다. 아주 드물게 형제들 중 한명만이 그의 작은방을 나갈 수 있는데, 그것은 공동기도를 위한 모임을 할 경우에만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단체로 식사를 하였고, 그들의 하루 한번의 금식은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병에 걸렸을 때를 제외하곤 아무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형제들은 단순하고 거친 옷을 입었다. 비록 다른 배경에서 왔다 할지라도, 그들 모두는 겸손과 강한 인내심으로 공동의 관습을 빈틈없이 지킴으로 연합하였다.

다수의 수사들이 계속적으로 주교가 되었다. 마틴의 수도원에서 훈련한 사제들은 무엇을 위해 도시나 교회를 갈망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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