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토마스 베켓(캔터베리대주교, 순교자, 1170년)
1118년 상인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배웠다. 그는 좋은 교육을 받은 후에 시의 행정관으로 일했다. 토마스는 스스로 자신은 훌륭한 행정가이며 재능이 있는 외교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켄터베리 대주교 테오발드의 비서로 들어가게 되었고, 테오발드 대주교의 조언에 따라 사제가 되었다. 1155년, 왕 헨리 2세는 그를 주 교좌의 부주교, 왕실의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토마스는 왕과 긴밀한 우정을 맺게 되었고, 토마스가 1161년에 테오발드를 계승하여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되기 전까지 그들은 사이좋게 일을 하였다. 그러나 토마스가 대 주교가 된 이후, 토마스는 궁중 출입을 일체 끊고 자선사업과 금욕생활에만 몰두하였다. 이에 왕은 자연히 토마스를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었다. 마침 교회와 국가 간에 법적 권위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로 궁정이 혼란에 빠지게 되었는데, 토마스가 교회의 특권을 주장하면서 왕과 마찰이 일어났다. 그 갈등은 1164년 토마스가 프랑스로 도피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6년이 지나 토마스와 왕이 화해함으로 토마스는 1170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왕은 자기의 심복을 토마스에게 보내어 과거에 출교처분을 받은 몇 사람에 대해 출교를 취소하고 복권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왕이 교회의 권위에 간섭하거나 사주해서는 안 된다며 단호히 이를 거절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분노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이를 듣고 있던 기사 네 사람은 이는 왕이 대주교의 암살을 원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대성당으로 쳐들어가 토마스를 살해하였다.
이 소식이 온 유럽에 퍼지자 유럽의 교회들이 토마스를 순교자로 공표하였다.
T.S 엘리옷의 ‘대성당의 살인’이라는 작품의 주인공이 바로 이 토마스 대주교다.
현재 토마스는 켄터베리 대성당 안에 묻혀있다.
에드워드 그림에 의한 <토마스 베켓 대주교의 살인에 대한 당시의 기록>에 대한 증언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이 지나고 5일째 되던 날, 저녁식사가 끝난 후, 성인은 일처리를 하기 위해 이미 가솔들과 내실로 떠나고 없었다. 수행원과 함께 네 명의 기사가 우격다짐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 기사들은 왕의 신하들로서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대주교의 가솔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긴 시간동안 그들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주교에게 경례를 하지도 않았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들의 리더로 보이는 윌리엄 휘츠울세는 화난 듯이 숨을 몰아쉬며 다음과 같은 말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당신에게 전할 왕의 명령을 가지고 왔소.: 이 왕국과 왕의 영지로부터 부터 당신의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시오. 앞으로는 왕과 당신사이에 또는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과 평화가 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이 그 평화를 깼기 때문이오.’
이에 대한 대주교의 대답은 이러했다. ‘협박하고 소리치는 것을 멈추시오. 나는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신 하늘의 왕에게 나의 소망을 두었소.:앞으로 이날로부터 그 아무도 나와 나의 교회 사이에 바다를 볼 수 없을 것이오(나와 교회를 떼어 놓을 수 없을 것이요). 나는 다시는 도망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오(나는 절대 영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나를 원하는 그는 여기서 나를 찾게 될 것이오.’
너무나 확고부동한 그의 대답에 기사들은 참을 수 없어 펄쩍 뛰었다. 그리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했다.; ‘당신의 당신의 목을 위험에 빠뜨리는 말을 하였다는 것을 명심하오.’ 그들이 무례하게 법석을 떨며 물러가자 하느님의 사람은 문까지 그들을 따라가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여기. 여기서 당신은 나를 찾게 될 것이오.’
소란법석으로 두려워진 모든 사무원들과 하인들은 늑대 앞의 양처럼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주교에게 교회로 도망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전에 자신을 죽이러 오는 사람들로부터 피하여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마음에 둔 그는 도주하기를 거절하였다. 하지만 수사들은 만도에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주교를 밀어 붙였다.
그 수사들이 교회에 연결되는 접의 문의 볼트를 잠금으로써 그들의 목자를 살해하려는 적을 막으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용감한 챔피언은 그들에게 돌아서서 문이 열리도록 그냥 두라고 하면서 말했다.: ‘이 문은 기도하는 사람들의 요새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잠겨져 있지 않더라도 교회의 아이들에게 충분한 보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싸우기보다는 고통 받음으로 우리는 적에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저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곧바로 칼을 뽑아들고 평화와 화해의 집으로 쳐 들어왔다. 미친 듯이 화가 난 기사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왕과 왕의 영역을 배반한자 토마스 베켓이 어디있느냐?’ 대답이 없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집요하게 소리쳤다:‘대주교는 어디 있느냐?’ 그들의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은 이때, 기사들의 기세를 두려워한 수사에 의해 끌려간 계단으로부터 대주교가 내려왔다. 그리고 완전히 확고한 목소리로 답했다.:‘보시오! 내가 여기 있소. 왕에게 배반한자가 아니라 사제요. 내게 원하는 것이 뭐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기둥아래 오른쪽 옆으로 돌아섰다. 그들이 ‘용서하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당신이 파문한 사람들에게 영성체를 하도록 복구해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거기에는 사죄가 없었오. 나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즉시 죽게 될 것이오’ 하고 그들이 소리쳤다. ‘나는 나의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소, 나의 핏속에 교회는 평화와 자유를 가지고 있어야 하오 ;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는 당신에게 나의 사람들, 즉 교회의 서기들이나 평신도들 중 그 누구도 해하지 말기를 바라오’
그때 그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신성모독의 손을 그 위에 놓고 거칠고 폭력적으로 바닥을 가로질러 끌고 잡아당겼다. 그때 정복당하지 않은 순교자는 자신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올리고, 하느님과 성모마리아에게 교회를 부탁하고 순교자 성 데니스를 축복하였다. 그가 이 말들을 마치기도 전에 사악한 기사들이 갑자기 그에게 달려들어 하느님의 산제물의 어린양 머리에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성스러운 성유를 바른 왕관의 끝이 잘라져 하느님에게 받쳐졌다. 그리고 같은 타격에 그의 팔이 거의 잘렸다.
대주교는 머리에 두 번째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움직임이 없이 꼿꼿이 서있었다. 세 번째의 타격에 그의 무릎과 팔을 꿇었고, 살아있는 산제물로 하느님에게 봉헌하였다. 그의 머리에서 하얀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머리가 피로 조금도 빨개지지 않고 그가 엎드려 누워 있을 때 세 번째 기사가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그 순교자의 삶과 죽음의, 동정녀 어머니의 빛깔들, 장미의 빨간색과 백합의 흰색으로 성당의 바닥이 물들었다. 힘도 아니고 문도 아닌, 인간의 덧없음의 자세로, 대주교는 치명적인 타격에 맞섰다. 그의 영혼이 아브라함의 가슴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을 동안에, 피와 골수를 튀기면서 마치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로 그의 몸은 바닥위에 누워있었다.
성 토마스 베케트 주교의 편지에서
우리는 주교, 대사제라 불리웁니다. 우리가 만일 불리우는바 그대로의 사람이 되고자 하면 또 우리 칭호의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영원한 대사제로 세워 주신 분의 발자취를 열심히 묵상하고 그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분은 각자에게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시고자 모든 행위와 그에 수반되는 모든 지향을 하늘 높은 데서부터 살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분의 대리자입니다. 그분 이름의 영광과 그분 품위의 영예를 받다 일시적으로 영적 노고에 대한 열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그들의 동반자들을 교회의 가장 높은 지위에서 계승합니다. 또한 봉사직을 통해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부숴버려 신앙과 덕행의 진보로 구성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합니다.
주교들의 수효는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품을 받을 때 가르치고 다스리는 사명을 열심히 또 온갖 정성을 다해 수행하겠노라고 약속했고, 지금도 매일 그 약속을 반복합니다. 우리가 약속한 신앙이 행동의 증거로써 더욱 믿을 만한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추수할 것은 많습니다. 그것을 거두어 주님의 곳간에 다 쌓아 두려 한다면 한 명이나 또는 몇 명의 주교들만으로는 넉넉치못합니다.
로마 교회가 모든 교회의 머리이고 가톨릭 교리의 원천이라는 것을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의 열쇠가 베드로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우리가 신앙의 유대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지식 안에서 완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아갈 때 온 교회의 체제는 베드로의 신앙과 가르침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하고 물을 주는 사람도 많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의 전파와 인구의 증가가 이것을 요구합니다. 한 개의 제단밖에 없었던 구약의 백성들도 거기에서 일할 많은 스승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제 이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온 후부터 이 필요성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이제 번제물을 바치려 한다면 레바논의 모든 나무로도 그것을 사를 장작을 다 충당할 수 없고 또한 레바논의 모든 짐승과 유다의 짐승까지 합쳐도 부족할 것입니다.
심거나 물주는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베드로의 신앙 위에다 심고 물주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자라게 하시지 않습니다. 로마 주교의 판단 및 그분이 담당한 직무를 함께 하며 그분이 맡긴 권리를 행사하는 수하의 교회 직무자들의 판단에 맡겨지는 백성들의 중요한 문제들은 분명히 베드로에게 위임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고 교회가 얼마나 큰 시련 가운데서 자라났으며 그리스도를 선장으로 모시는 베드로의 배가 얼마나 큰 풍랑을 이겨냈고 또 시련 속에서 밝히 신앙을 드러낸 이들이 어떻게 월계관을 받게 되었는지 기억하십시오. 모든 성인들은 이렇게 하여 성인이 되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만이 월계관을 얻는다."라는 말이 성인들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