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법대로 정결례를 치르는 날의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의아한 모습입니다. 법대로라면 정결례는 아기 예수가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이며 마리아를 대신하여 아버지 요셉이 성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 맨 처음 예수님의 족보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자녀도 여자가 낳는 것이 아니고 남자가 낳는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아기를 낳아 부정한 몸이고, 또한 여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아기가 사제의 손에 의해 봉헌되었기 때문에 히브리 문화 안에서 ‘부모’가 아들을 봉헌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도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예식’과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오롯이 도로 바쳐 ‘봉헌하는 예식’이 문장 안에서 함께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루가는 왜 이 당시 누구나 다 알법한 이 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하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로 시므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하게 살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사람과 안나라는 나이 많은 예언자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오랜 기다림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기다림은 우리의 인생살이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마침내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삶 말입니다. 온갖 슬픔과 절망, 육신의 연약함의 과정을 통해 진정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하느님께로 나가는 길을 만나고 주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잘못된 길을 걸을 때 우리를 넘어뜨리고 세워야할 본연의 삶을 일으켜 세우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야훼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을 노래합니다. 우리의 기다림과 회개, 그리고 순종이 바로 요셉이며 마리아입니다. 첫 아들은 바로 새로 거듭난 우리들입니다. 바로 아기 예수입니다. 이제 나자렛이라는 고향, 생명의 근원인 하느님의 사랑으로 돌아가 그 사랑을 삶으로 키워내야 할 때입니다. 이사야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느님의 정의를 보고 영광을 보리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 몸소 지어 주신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부리리라는 선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갈라디아교우들에게 선포하신 말씀처럼“이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실 내 자신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이고 내 남편도 내 자녀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들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신랑이신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이고 간음하여 정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푸신 하느님께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고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은총으로 여기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몸과 지혜가 자라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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