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유혹을 받으신 후 요한이 잡힌 뒤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주님은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시며 첫 번째로 제자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들은 생존의 수단을 버리고 형제와 부모를 남겨두고 예수를 따른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에 아내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슬픔과 기쁨이 있는 사람들도 없는 것처럼, 물건이 있는 사람은 자기 소유가 아닌 것처럼 지내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바로 사도 바울로가 전하고 있는 구원의 때요, 하느님의 다스림이 임하는 때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결단이 분명코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부르심에 단호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족과 생업을 포기하는 것이 어찌 이렇게 단순하게 기록되어 질 수 있느냐?는 의문은, 오히려 우리에게 결연한 선택을 요구하시는 것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요나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살아오던 못된 행실의 삶을 버리기만 하면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하는 자녀들의 선택의 첫 번째는 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지금까지의 우리 삶을 분명하게 돌이켜 보아야 하는 일입니다. 나를 먹여 살려왔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늘 손질하며 합리화시켜왔던 생각과 삶의 습관을 분명하게 보아야만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부 네 사람은 이렇게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살아왔던 우리 자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물을 손질하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아내를 없는 것처럼, 슬픔과 기쁨에 가지고 있는 것에 붙들지도 붙들리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입니다. 버릴 것을 그리고 남겨 두어야 할 것을 분별하게 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그래야 머리에서 가슴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이 가난해 지는 일이며 버리는 일입니다. 슬퍼하고 고난을 받으며 기뻐하는 역설적인 삶이 바로 진정한 회개가 되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맞이하고 일구어 가는 첫 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이 요나와 니느웨를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불순종의 시간이 바로 나와 대면하는 순간이며 구원의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의 때가 왔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의 삶을 회복할 때가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그물과 아버지를 떠나 주님을 따르며 사람을 건져 내는 삶으로 나아가시길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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