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수께서 집에 돌아오시자 군중이 모여들어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친척들은 그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붙들러 옵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다가오실 때 우리 마음은 이렇듯 의심과 불안함에 휩싸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러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십니다. 사탄이 사탄을 어떻게 쫒아 내겠느냐? 한 집안과 한 나라가 서로 갈라서 싸우면 집안도 나라도 지탱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 치유와 회복의 일들이 누구의 뜻인지를 보여주고 계심을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죄를 짓든 욕설을 하던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선포하십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일은 우리 자신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부정하는 일로써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죄 가운데 살아감으로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 스스로 용서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직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구원이 당신의 삶을 따르는 자들에게 열려 있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오늘 창세기 말씀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말씀은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냐?”라는 주님의 반문과 같은 말씀입니다.
군중이라는 오만가지 생각과 판단에 사로잡혀 먹어야 할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영혼들은 시기와 질투, 의로움에 눈이 멀어 주님을 붙들려 합니다.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판단하는 자리에 앉고 싶어하는 마음이, 수많은 군중이며 오만가지 생각들이 우리를 굶주리게 만드는 것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고 자매로 여기고 살아오지 않았는가?를 묻고 계시는 말씀으로 들려옵니다.
주님은 다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어떤 삶의 자리에 서 있느냐?”“너희는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며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주님의 삶이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두려움과 남의 탓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 순간 우리의 내적 인간은 새로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고난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우리 옆자리에 앉아 계심을 바라고 있고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어머니와 형제, 자매로 여기고 자라나고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묻는 것이 기도이며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형제, 자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우리를 통하여 온 세상에 전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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