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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4주일 "불편함을 감수하는 신앙"

작성일 : 2020-01-02       클릭 : 12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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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감수하는 신앙

 

 

김은경 드보라 보좌사제

 

1. 오늘은 대림 4주일입니다. 이제 며칠 후면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지난 3주 동안 첫째 주에는 임박해 있는 심판에 대한 경고 메세지를 들었습니다. 둘째 주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주에는 자기백성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 관한 희망의 메세지를 읽고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대림4주일인 오늘 그 희망을 가져오시는 분이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이라는 걸 확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이 잉태된 당시 상황으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자신들 곧 유다인들이 조상때부터 대망해왔던 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이사야서 7장에서 예언된 임마누엘과 연결시켰습니다. 이사야서 7장 말씀은 하느님이 아하즈 왕에게 한 가지 징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신 예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빌론 포로기전 이스라엘 역사 속 인물인 아하즈 왕 시절에 하느님이 아하즈 왕에게 한가지 징조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느님이 아하즈 왕에게 보여주시겠다고 한 징조는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이라 불리울 분이 역사 속에 사람으로 태어나실 거라는 예언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시는 분이 태어나신다니 얼마나 가슴 뛰고 벅찬 말씀인가요. 이사야서 7장 말씀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거라고 약속하시면서 , 심판이 구원보다 앞서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이 다 끝난 후에, 심판 경고를 듣고 회개한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질 거라고 하셨습니다.

 

2. 마태오복음 1장에서 그 구원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120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은 과학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장면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 123절 말씀은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 예수님을 이사야가 예언했던 임마누엘로 받아들였습니다. 여기서 아기 예수님이 잉태되고, 그 상황을 마주한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 왜 예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동정녀였던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는 약혼자 요셉과는 상관이 없는 아기였습니다. 복음서는 그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걸 보여줄 아이가 잉태된 상황만 놓고 보면 그 상황이 매우 불행해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가정에서 새 생명이 잉태되었을 때 부모가 될 이들이 서로 기뻐하는 상황과는 대조적입다. 임마누엘이 잉태되었다는 소식은 요셉과 마리아를 불안하게 했고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임마누엘 아기예수는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날 위기에 놓여 있었고, 마리아는 파혼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처녀인 마리아가 정혼자 요셉과 관련없는 아이를 잉태한 사실이 알려지면 당시 풍습으로는 마리아가 돌에 맞아죽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셉 입장에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아이를 잉태한 정혼자 마리아와 파혼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요셉을 비난할 수 없을만큼 정당했습니다. 요셉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수 있고, 낙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정혼자 요셉 그리고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아이를 잉태한 요셉의 정혼자 마리아는 둘 다 두렵고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3. 이처럼 불편하고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와 헤어지지 말고 마리아를 받아들이라고 당부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천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불편하고 불행해보였던 요셉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추었습니다.

 

짐작컨데 요셉은 꿈 속에서 천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혼자에 대한 배신감과 자기에게 닥친 불행한 상황으로 인해서 절망감에 싸여서,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했을 겁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신비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마리아는 미혼모였고, 요셉은 정혼자에게 배신당한 처지였습니다. 아기 예수님도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인간적 신뢰가 깨진 것처럼 보이는 가정에서 태어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로서 예수라고 불리울 것이며, 그 아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 요셉은 천사가 해준 말을 듣고, 마리아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성령이 하신 일 곧 신비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마주한 상황이 가져온 불편함 그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구원 약속을 믿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동참하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마리아도 자신에게 일어난 불편한 상황을 성령이 하신 일로 받아들여서 아기 예수님이 무사히 태어날 때까지 보호하고 양육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하느님의 약속을 실현시키는 일에 자기 존재와 삶을 다 바쳐서 헌신하고 참여했습니다.

 

당시의 세상적 기준에서 보면,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성령으로 잉태한 임마누엘은 자기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희망을 일군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자기를 불편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앞에 놓인 힘든 난관을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구원의 약속을 붙들었던 마리아와 요셉은 자신들을 불편하게 만든 작고 연약한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불편함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약속을 붙들고 구원 역사에 동참했습니다.

 

5. 작고 연약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보호하고 함께 했던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느닷없이 자신들의 인생에 끼여든 아기 예수님을 거부하거나 버리지 않았습니다.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들을 배제시키고 내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인간적인 방법이며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요셉은 우리에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과 사람들을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아기 예수님인 듯이 받아들이라고 도전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입니까. 그 사람을 예수님처럼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하느님의 구원 약속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하느님의 시선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빛 안에서만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과 상황들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 자신들의 삶으로 하느님이 아기 예수님과 함께 하심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요셉과 마리아를 본받아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세상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 하느님이 늘 함께 하고 계심을 알게 해주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바랍니다.

 

6. 세계성공회는 지난 수십년 동안 불편함을 감수하는 신앙, 곧 불편하고 두렵게 하는 도전을 받아들이고 헌신하며 참여하도록 이끌어주는 신앙으로 초대해주었습니다. 여성사제서품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세계성공회는 1862년 영국에서 첫 여성 부제를 서품했고, 오랜 세월동안 여성 사제직을 인정하지 않다가 마침내 1944년 홍콩성공회가 플로렌스 리 팀오이 부제를 사제로 서품주는 것을 시작으로 오랜 격론끝에 1970년대 이후로 세계 많은 관구들이 여성사제서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후 1988년 미국이 여성주교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부제, 사제, 주교 3성직에 모두에 여성을 받아들였습니다.

 

중세 이후로 남성에게만 허용했던 성직서품을 여성에게도 개방하는 일은 남성성직자에 대한 경험만을 쌓아왔던 교회문화에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교회는 여성에게 성직서품을 주기전까지는 남성중심의 문화에 익숙하게 모든 직제와 질서를 조직했습니다. 하지만 여성성직자들이 생겨나고 교회위원회나 교구 등 교회의 선교정책을 논의하는 구조에 여성들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교회에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성공회에서 서품 받은 여성성직자들도 남성중심 성직사회에 불편을 주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가령 호칭 문제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7. 제가 서품을 받고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어떤 분들은 저를 부르는 호칭을 사제라고 불러야 하는지 신부라고 불러야 하는지 물어보셨습니다. 명칭과 호칭을 구분해야 하는데 사제는 명칭이고 신부는 호칭입니다.

 

한국은 명칭보다는 호칭으로 부르는 걸 선호하는 사회이고, 대한성공회가 아직은 사제단에서조차 성평등한 호칭에 대해서 합의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들은 여성사제도 신부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 문제를 언젠가는 정리해야 한다는 게 여성성직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하지만 관습을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관습을 존중하면서도 변화를 위해서는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여성직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다보면 서로 비슷하거나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합니다. 많은 여성 사제들이 꼭 한번씩은 사모님이라고 불리거나, 전도사님, 선생님, 심지어 어떤 분은 세례명만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게다가 결혼한 여성 사제의 배우자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것도 통일된 기준이 없는데, 배우자가 평신도냐 성직자냐에 따라서 다르고, 여성직자가 워낙 규모가 적어서 이게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성직자인 경우에 만약 부부 성직자가 같은 교회에 있을 때, 어떤 교회는 그 여성 사제를 사제나 신부가 아니라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일도 생기고 있습니다. 그 여성사제도 엄연히 주교제교회인 우리 대한성공회의 주교님이 서품을 준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제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주교와 교회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입니다.

 

이처럼 여성 사제들의 등장은 기존에 고정되어 있던 풍습이나 문화를 바꿔나가는 일이어서 불편함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왔던 일들이 하나하나 제동에 걸리고 한 번 더 고려해야 하니 귀찮은 일이며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은 우리의 신앙의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하는 일이며, 교회 안에 있는 서로 차이가 있는 구성원들이 조화롭게 협력하며 교회를 이루어가며 하느님 나라의 내용을 채우는 일들입니다. 배제하고 통제하며 희생양을 만드는 세상의 지배 방식에 대항하여 모든 구성원 특히 약하고 작은 이들을 돌보며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하느님의 다스리심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8. 최근 세계성공회협의회는 2012년 제15차 대회부터 올해 제 17차 회의에 걸쳐서 '안전한 교회' 와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전한 교회란 교회내의 어린이, 청소년, 취약한 성인에게 안전한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성공회를 어린이 청소년 취약한 성인들 곧 연약한 이들을 잘 받아들이고 돌보는 안전한 교회로 새워나가기 위해서 세계성공회에 속해 있는 각 관구들이 안전한교회만들기 지침서를 이행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안전한교회 만들기라는 이름만 놓고 보면 별로 불편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은 불편하고 안정을 깨는 것처럼 두려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20183월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있는 교회 내의 아동성학대에 대한 독립조사를 착수시키면서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신학적 근거를 내세웠습니다.

 

그 중에서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범을 말해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시라고 알고 믿고 있는 예수님은 전쟁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작은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연약하고 작은 아기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보호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장하시면서 보호를 필요로 했으며 예수님의 사례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대림4주일을 지나고 성탄을 목전에 둔 때에 대한성공회의 모든 교회들이 어린이, 청소년, 취약한 성인들을 비롯한 모든 연약한 이들의 모습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연약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기 바랍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요셉이 되고 마리아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질서와 편의성 측면에서 보면 불편한 일들, 세상의 질서를 흔들며 두렵게 하는 일들이 교회를 향해서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현실의 문제들을 기도하는 가운데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진리를 가르쳐주시기를 소망하고 믿으며 이 시대가 우리를 도전하고 있는 일들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걸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드러내는 증거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편하게 하고 두렵게 하는 일들이 찾아올 때 세상의 질서에 대항하는 하느님의 구원역사가 펼쳐지고 있다는 걸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희망하시며 성탄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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