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시련과 역경,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이겨나가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가족, 자녀의 사랑이 이겨낼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 하느님은 여러분에 어떤 역할을 하였습니까? 그 모든 시련과 절망을 이겨나가는 힘, 원동력이 예수님, 하느님이었다고 감히 고백하실 수 있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57)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합니다. 먹고 마신다는 것은 직관적 성찰, 성령의 도우심으로 반추와 조명을 통해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화하여 새로운 인식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내 살은 곧 주님의 교훈, 가르침, 말씀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 곧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확신함과 동시에 하느님의 성품, 속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난 한 주간의 본문 말씀이 다시 새겨졌습니다.
월요일 본문에서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마19;21)는 말씀이, 화요일엔 “너희도 열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28)였습니다. 나의 전 재산, 곧 전존재를 버리고 비울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존재의 본질, 정체성을 하느님의 숨에서 찾았습니다. 이것이 살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내 피는 먹는다는 것, 그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통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고 마음에 드는 자녀임에 대한 재인식을 말합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복음, 곧 포도원 일꾼과 품삯과 혼인잔치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는 말씀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하느님과 일치에로, 축제의 삶에로의 부르심인데, 내 잇속에 속아서 초청에 거절했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없이 서성이던 나를 불러 주시고, 당신의 겉옷(예복)을 입혀주신 은총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이심을 포기하고 사람이 되셨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당신의 겉옷, 곧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은총을 되새기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사43;4)라는 말씀이 제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다함없는 자비와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그의 피를 마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영성체를 할 때, 주님의 전인격, 온전한 삶과 죽음을 건네받는 것입니다. 건네받는다는 것은 주님의 발자취, 주님이 사신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당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시는 은총에 감사와 찬양의 산 제물로써 응답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 예수가 내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주님은 "자,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도 떠나가겠느냐?"하고 묻으십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이런 고백과 더불어 예레미야처럼 “뼛속에 갇혀 있는 주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올라 견디다 못해 저는 손을 들고 맙니다.”하며 불붙는 가슴으로 주님의 사역,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삶, 주님의 힘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