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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삼위일체 주일

작성일 : 2018-05-25       클릭 : 116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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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은 성삼위일체주일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성령강림대축일을 지내는 것으로 기나긴 부활절기를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부활은 부활대축일에서 성령강림대축일의 50일간만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 주일 감사성찬례를 통해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지내는 모든 주일은 작은 부활절인 셈입니다. 모든 주일에 부활을 증거하지만 보다 집중적으로 부활을 기념하는 시기가 부활절기인 셈입니다. 우리는 성령강림사건으로 부활절기를 마감한 후 이어지는 긴 연중시기에 들어옵니다. 올해 122일 맞이하는 대림1주일 전까지 우리는 매 주일 대부분을 연중주일로 지킵니다. 이처럼 긴 연중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성삼위일체 주일을 지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기념하는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 대부분을 살아감에 있어 언제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하고 오랜 역사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이루신 모든 피조물의 구원을 기념하는 데에 있습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조금 어려운 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위는 위격을 뜻합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는 성부라는 위격, 성자라는 위격, 성령이라는 위격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위격이란 말은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에 관해 인격이 어떻다고 말할 때 사용하는 인격과 유사한 말입니다. 삼위의 하느님께서 각각의 독립된 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삼위이신 하느님입니다. 쉽게말해서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으로 인간에게 계시를 통해 당신을 알려주신 모습입니다. 이 삼위의 하느님께서 일체시다는 말이 오늘 우리가 고백하고 기념하는 신앙의 내용입니다. 사람은 각자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육체를 지닙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란 말은 세 위격을 지닌 삼위의 하느님께서 본성은 하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셋이 하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 속에서 셋이 하나인 경우는 없습니다. 둘이 하나인 경우도 없습니다. 다만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만 가끔 사용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면서도 사실 삼위일체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잘 압니다.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시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때로는 이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오랜 시간 전부터 말입니다.

 

사실 삼위일체에 관해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상징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녀를 이용해 가족이라는 범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또는 세 잎 클로버를 가지고 각각의 잎과 세잎이 모여 하나의 클로버 잎이라 부를 수 있다는 이미지로도 설명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설명도 삼위일체에 관해 속 시원히 답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삼위일체는 분석과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에 관한 오랜 일화가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매년 저 역시 부족한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모니카의 아들인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한날은 그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고자 깊이 사색하면서 바닷가를 걷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어린 소년이 모래 구덩이를 파고 조개껍질에다가 바닷물을 퍼와 모래 구덩이에 붓고있는 모습을 아우구스티누스가 발견합니다. 한참을 지켜보던 아우구스티는스는 그 소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 소년은 저 모래구덩이에 바닷물을 다 담으려하고 있노라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아우구스티누스는 크게 웃으며 아이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니 그러길 멈추라고 타이릅니다. 이 말을 들은 소년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바라보더니 할아버지의 그 작은 머리로 어떻게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하느냐고 반문한 뒤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신앙의 합리적인 설명을 추구하는 신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큰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그런 그 역시도 삼위일체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삼위일체론이란 수업을 들었습니다만 가르치는 교수신부님도 배우는 학생들도 모두 그 신비를 모두 알아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그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많은 내용들이 아주 부분적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삼위일체에 관한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하느님 현존의 고백과 같은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무한히 우리와 떨어져 계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과 떨어져 저 높은 곳에만 거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멀리계신 하느님이셨어도 예언자들을 통해 늘 당신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그 시대의 사람들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성서는 증언합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님의 강생으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의 강림을 통해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께서 우리와 늘 함께 계시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하느님 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체험하는 현실이 살벌하고 어려움에 가득한듯하지만 그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논리로 이해하는 그런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전례력으로 앞으로 우리가 지내게 될 긴 연중시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우리의 일상이 하느님과 관계없이 엮어지는 듯 느껴지더라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을 잃지 않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우리는 전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하고 그분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도록, 우리의 삶에 그분께서 살아서 함께 하심을 느끼도록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성삼위일체 주일을 지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초대에 온전히 응답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신앙표현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그분은 성부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성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부활 승천하신 뒤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구요나로렌스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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