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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4주일 설교문_성모 마리아를 본받는 신앙

작성일 : 2018-12-21       클릭 : 119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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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를 본받는 신앙

(루가 1:46-55)

 

김은경 신부 작성

 

1. 이제 내일 밤부터 성탄절입니다. 일산교회 교우님들 모두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일산교회 어린이 유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주실 예수님의 선물을 받고 싶어서 성탄밤 발표회 준비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교우님들은 이번 성탄절에 어떠한 소망을 갖고 계신가요?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성탄을 앞두고 있는 이때에 우리 사회에는 죽음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종로국일고시원에서 일어난 화재로 열한분이 다치고 일곱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백석역 일대에서 노후된 온수관이 파열되서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강릉 KTX가 철로에서 이탈해서 사람들이 다쳤습니다. 이주 전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청년이 산재사고로 사망했고, 며칠 전에는 수능을 마치고 강릉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고3학생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이처럼 가슴 아픈 일이 연거푸 일어나며 죽음의 소식 이어지는 이 시점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어떤 소망을 전할 수 있을까요?

 

성서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지 귀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2. 오늘 읽은 1독서에서 예언자 미가는 한 아기가 태어나서 하느님을 대신해 백성들의 목자로 나설 때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릴 거라는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미가는 이스라엘이 남북국가였던 시절 주전 750년에서 690년 사이에 남유다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걸 목격했습니다. 이어서 앗시리아 제국이 호시탐탐 남유다에도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정세 속에서 활동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남유다 내부적으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빼앗고 억압했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미가는 다른 예언자들처럼 부패한 세상의 통치자들과 종교지도자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을 향해서 심판이 임박해있다고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미가는 다른 한편 가난한 사람들, 포로로 사로잡혀 종살이 하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하느님이 평화를 이루게 해 주실 거라고 위로하며 희망을 선포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평화는 개인과 사회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삶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개인이 마음을 잘 다스려서 평화를 도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도모하는 사회적 합의와 실행이 병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누린다고 할 때는 포로들이 귀환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억압과 착취가 끝나는 등 반드시 현실의 변화가 수반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평화가 이루어졌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 미가를 통해서 바로 그 평화 곧 가난한 사람과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에 대한 학대와 착취를 종식시키는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한 아이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남으로써 성취됩니다.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이 이스라엘의 남아 있던 이들에게 돌아오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그 아이가 자라나 하느님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목자로 나설 것이고,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서 모든 사람이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 거라고 하느님은 약속하셨습니다.

 

3. 복음서 저자들은 미가가 예언한 하느님의 약속이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예언자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자기 존재를 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하느님의 약속이 이뤄지게 할 사람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자기 뜻을 내려놓고 응답한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이러한 자기 비움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실 왕이신 아기 예수님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4-1. 그 맥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읽은 루가복음 앞부분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감사성찬례 때 읽고 묵상한 수태고지 장면입니다. 하느님이 보낸 천사 가브리엘이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루가복음 126절부터 55절까지의 단락은 하느님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부르시고 응답할 수 있도록 어떻게 설득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를 부르신 분이 하느님 자신이시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느님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를 보내셨을 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그들을 윽박질러서 통제하거나 조정하려고 하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만약 하느님이 마리아를 통제하고 조정하려고 했다면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는 수고를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냥 설명없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게 하고, 요셉에게 파혼을 당하든지 말든지 상관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마리아에게는 물론이고, 마리아가 자신과 상관없는 아이를 잉태한 것을 알고나서 파혼할 것을 결심했던 요셉에게까지 천사를 보내셔서 파혼하지 말라고 설득하시며 전후사정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고 인사했을 때 마리아는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느님이 마리아를 존중하고 계시며, 마리아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있음을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성공회는 성서와 이성과 전통에 비추어서 진리를 식별하는 교회입니다. 마리아가, 천사가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한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무턱대고 믿는 맹신이 아니라 신중하게 진리를 구하려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마리아의 의문까지도 존중하셨습니다.

 

생각해보고 스스로 결심할 시간을 준다는 건 존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갖고 응답할 때까지 믿고 기다리겠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마리아와 요셉이 스스로 결단할 수 있도록 기다리셨습니다. 굴복시키려 하지 않으시고 믿어주셨습니다. 온유와 인내와 겸손으로 다스리신다는 건 이처럼 스스로 결단할 자유를 주고 자유의지로 응답할 수 있도록 침범하지 않고 지켜야 할 선을 지켜주며 존중하는 걸 의미합니다.

 

4-2.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마리아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찾아온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사명을 맡기셨듯이 마리아를 부르신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고,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장차 자라나서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고, 하느님이 마리아가 낳을 예수에게 다윗의 왕위를 주시고,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릴 왕이 되게 하셔서 그의 나라가 끝이 없을 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이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약속해 주셨던,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구세주 탄생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부르셔서 사명을 맡기셨듯이 마리아에게 찾아오셔서 구세주를 잉태하고 낳을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입이 부정한 자라고 하며 사명받기를 주저했던 것처럼 마리아는 자신이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천사는 이제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녀의 친척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신비한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미 늙어서 임신할 수 없는 엘리사벳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아기를 가져서 벌써 여섯 달이 되었으며,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하느님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사려깊게 마리아를 부르고 계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서 마리아에게 맡기실 사명과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 일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표징까지 준비해두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여인 엘리사벳의 소원도 들어주시고 동시에 그 일을 보고 마리아가 결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몸소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천사가 해준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고, 하느님이 마리아 자신에게 맡기려고 하시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다 듣고나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자신의 신을 벗었던 모세처럼 하느님께 대답했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5. 천사가 떠난 후에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준 신비한 소식을 직접 확인하려고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자신의 집에 도착했을 때 태중의 아이가 뛰놀았다고 말해주면서 마리아와 태중의 아이를 축복하며 기뻐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듯이 엘리사벳도 마리아가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예비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을 내어맡겼던 것처럼, 엘리사벳을 만나고 나서, 마리아는 확신 가운데, 구세주를 나게 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찬가를 불렀습니다.

 

6. 오늘 그 찬양노랫말을 함께 들었습니다. 찬가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뉩니다. 이 두부분은 마리아가 부르심 받은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줍니다. 전반부는 하느님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하셨던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앞부분에서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고통 속에서 애통하는 이들을 먹이시고 그들을 자유케 하시며 평화를 주실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우리 모두가 마리아의 신앙을 본받아서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우리를 평화의 사도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지금도 평화롭지 못한 곳, 우리 사회 속에서 애통해 하며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은 그들이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애통하고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계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곳에 와서, 아기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 태어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애통하는 자, 고난 받는 자들과 함께 평화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으며, 하느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자신의 전 존재와 삶을 내어드리기로 결단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읽은 루가복음 154, 55절 말씀을 헬라어 원문과 영어성경 대조판으로 보면 내용이 더 분명합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조상들과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자비를 기억하셔서 그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실 겁니다.”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자신과 그 자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돕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맺어진 계약이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찬양입니다.

 

따라서 찬가 후반부에서 마리아는 아브라함을 먼저 부르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약속하신 하느님, 그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겁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이 주신 사명에 믿음으로 응답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평화의 왕 예수님을 낳으셨습니다. 죽음을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분을 잉태했습니다.

 

우리도 마리아를 본받아서 죽음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생명을 살리라는 소명에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부수적으로 따라와야 할 결과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로 들어서느냐 마느냐에 관한 차원입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 생명의 길을 택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우리 사회는 마치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고 있는 것 같은 메시지를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사람됨의 권리를 빼앗고, 억압하라고 합니다. 죽음의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조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죽음의 권세는 아기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완전히 무력해졌습니다. 죽음의 세력은 이미 끝이 났습니다. 하느님은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나게 하셨고, 세상의 죄악으로 인해 예수께서 수난당하셨지만, 마침내 하느님이 죽음에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죽음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하느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는 걸 확증하셨습니다.

 

하느님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속에 있다는 자각을 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의 관계를 믿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바로 이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하느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응답을 통해서 지속해나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은 그 어떤 죽음의 세력으로도 그 부르심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나아가셔서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이들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전하셔서 그들이 거룩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사명을 충실히 이행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삶은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가 신앙을 개인의 인격이나 윤리성에 국한 시켜버린 것처럼 개인적인 영역으로 제한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한다는 건 개인과 사회 속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게 하는 생명의 역사를 써나가는 일입니다.

 

생명을 경시하는 이 시대에 모든 생명이 그 무엇으로도 대체불가하다는 것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리고 은총을 받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고 조정하고 착취하는 죽음의 세력과 맞서서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응답한 모든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라고 선포하시며 생명을 살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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