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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30주일 설교문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마르 10:52)

작성일 : 2018-10-26       클릭 : 24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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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30주일 설교문 김은경 신부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마르 10:52)

1. 교우님들이 기도해주신 덕분에 서울교구 성직자 피정에 잘 다녀왔습니다. 피정은 피세정념을 줄인 말입니다. 속세를 떠나서 생각을 비워서 마음을 맑게 하는 걸 뜻합니다.

이번에 피정에 참여하면서 성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는데, 첫 시간부터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즈음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식구들이 잠들면 동네에 있던 개척교회로 철야기도를 다니셨습니다. 이미 잠이 든 동생들과 어버지를 남겨두고, 저도 어머니를 따라서 밤 열시즘이 되면 교회에 갔습니다.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던 때였습니다. 늘 동생들에게 어머니 곁을 빼앗겼는데 교회를 따라가면, 어머니 곁에서 잠들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으니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습니다.

기도하시는 어머니 곁에서 한참 자고 있는데, 어느 때가 되면 어머니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이 깨서 보니, 어머니가 아버지! 아버지! 라고 하시며 그렇게 울고 계셨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를 따라서 울면서 외할아버지가 보고싶어서 울고 있는거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꼭 안아주시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거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자라고 하시며,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를 울게 만든 하느님이 밉다고 하면서도 하느님께 엄마가 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가난했던 시절에 의지할 데라곤 하느님 밖에 없었을 때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바르티매오와 닮았었다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2. 바르티매오는 티매오라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한 개인을 위해서 특별하게 지은 이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바르티매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고, 노숙인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잊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돌봄을 받지 못했고,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버림받은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바르티매오도 예수라는 분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침 예수께서 수난받으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예리고라는 마을을 들렀다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시각장애인이자 노숙자인 바르티매오가 앉아 있는 길을 지나가셨습니다. 나자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은 바르티매오는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하느님이 세우신 통치자를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찾아다니시며 고통에서 해방시키시는걸 보면서 드디어 자신들을 헤로데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분이 오셨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바르티매오도 다른 예리고 사람들처럼 기대감을 가졌습니다.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면 자신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부르자 여러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사람들의 꾸짖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바르티매오의 외침에 응답하자, 조용히 하라며 꾸짖던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고 격려해주며 예수님이 바르티매오를 부르신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얼마나 기뻤는지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예수님은 바르티매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바르티매오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고통을 정직하게 드러냈습니다.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마르코 복음 다른 장면에서처럼 그에게 가라고 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떨어지자 바르티매오는 볼 수 있게 됐고, 그 이후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다는 건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걸 가리킵니다.

3. 이 이야기는 당시 유다사회가 메시야를 얼마나 허황되고 위선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메시야가 오셔서 자신들을 대신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은 그대로 있고, 남들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보기 싫고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은 바르티매오를 꾸짖는 게 전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바르티매오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4. 이것은 그들이 자기 조상들을 출애굽하게 해주신 하느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신 자비하신 하느님과 상관없이 살아왔다는 걸 말해줍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에 대해서 들어는 봤지만, 그들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출애굽시키신 하느님,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향땅에 돌아오게 하신 하느님은 자비의 하느님이셨습니다. 

함께 읽은 예레미야서 31장을 보면 우리는 하느님이 왜 자비하신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을 귀향시키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 귀향하는 무리 중에 특별히 언급된 사람들을 보시면 대부분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 다리에 장애를 가져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 임산부, 아기를 업은 여성, 이들은 모두 다른 이들이 배려해줘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이 자비하시다는 건 가장 약한 자를 고려하시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특별히 더 돌봐주시다는 걸 의미합니다. 

5. 반면에 바르티매오는 우리에게 믿는 사람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자신을 꾸짖던 사람들로 인해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냉담과 멸시를 내면화해서 스스로를 비난하며 상처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하느님이 세우신 다윗의 자손이라면 마땅히 자신처럼 소외받고 멸시받는 사람의 말도 들어주는 분이어야 한다고 바르티매오는 믿었습니다. 이처럼 고통의 문제로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 고통의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슬퍼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자비를 구하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 말씀처럼 바르티매오는 가난하고 슬퍼하며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당당하게 하느님이 세우신 통치자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제한했지만, 그는 제한하지 않았고, 마침내 예수님은 그를 위로하셨고, 만족할 수 있게 해주셨고, 하느님 나라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여러분도 바르티매오와 같은 믿음을 갖고 계신가요? 이 믿음을 가지셨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제한하지 않은 그 하느님, 자비하심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바르티매오처럼 여러분도 자비하신 하느님께 위로받고, 하느님 나라를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6. 바르티매오는 눈을 뜨자 곧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더 이상 아무도 바르티매오를 꾸짖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줄 알았던 바르티매오는 이제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르티매오를 본받아서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의 자비를 제한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겪을 때 여러분을 흔드는 말이나, 상황으로 인해 주저 앉지 말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약한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우선적으로 배려해야할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하신 은총을 전달하게 하시려는 까닭입니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은총을 먼저 입은 자로서, 지금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을 대표로 겪고 있는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옳은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에게 찾아가셔서, 자비하신 하느님의 도우심이 이를 수 있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제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꾸짖고 주저앉히려고 할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자비하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고 도우실 거라는 걸  굳게 붙잡고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서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따뜻하고 은총 가득한지를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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