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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그리스도주일(연중 34주일) 왕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종말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작성일 : 2018-11-24       클릭 : 19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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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종말 신앙으로 살아갑시다! (묵 1:5)
 
 
김은경 신부(보좌사제)

1. 오늘은 교회달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왕이신 그리스도주일입니다. 지난 한해 동안 우리는 교회력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우리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온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력을 따라서 살아갈 때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점점 더 성숙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만물이 그리스도를 왕으로 고백할 때가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종말의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만물이 하느님과 화해하는 때이고, 만물이 서로 화해하는 때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갖는 것을 종말신앙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종말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종말이라고 하면 모든 별이 떨어지고 지구가 멸망하는 걸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린이였던 시절, 80년대나 90년대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무서운 이야기 경쟁을 벌일 때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휴거와 종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휴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날짜를 특정해서 집단자살하는 등 불행한 일도 있었습니다. 종말에 대해 잘못된 이해와 신앙은 현실을 살지 못하게 하는 도피 수단이 됩니다. 

3. 하지만 교회 역사를 통해서 이어져 내려온 종말신앙의 전통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종말에 대해 두 가지 의미를 가르쳐왔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종말의 때에 하느님이 모든 죄악을 심판하시고, 또한 모든 만물을 회복하실 거라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뜻하는 마라나타라는 말로 인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셔서 모든 죄악을 심판하시고 만물을 회복시키실 그때를 기다리며 마라나타라고 인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그 때는 신자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삶을 통해서는 도래하지 않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세상이 흉흉해지고 가짜 그리스도가 여기저기서 나타날지라도 당황하지 말고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실제로 순교자들과 성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 가운데서 하느님의 다스리심을 받아들였는지를 알려줍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에게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이신 예수께서 그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활동하시며 동행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종말신앙은 사랑과 정의평화가 실현되고 진실이 드러나는 구체적인 현실을 기반하고 있습니다. 

4. 그리고 왕이신 그리스도 축일에 우리가 읽은 복음말씀은 이천년전 실제 역사 현장이었던 빌라도 법정으로 우리를 데려 갑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고발당한 채로 빌라도 법정에 서 있는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고발당했다는 건 한 개인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순간이며, 동시에 고난의 순간입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계신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시는 왕과 세상이 모시는 왕의 의미가 다르다는 걸 말해줍니다. 세상에서 왕이라고 하면 전제군주를 떠올립니다. 모든 전권을 휘두르는 절대 권력의 상징입니다. 힘의 최고 정점에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예수님은 참으로 무력해 보이는 왕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죄악을 뒤집어씌울 때,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약한 자로 남으셨고, 약한 자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왕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무력하고 약한 왕입니다. 하느님과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지고 가는데만 온 힘을 기울인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약한 분입니다. 

5. 반면에 이 세상은 우리에게 힘을 차지해서 나 자신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갈 희생양을 찾으라고 합니다. 약함을 조롱하고 혐오하라고 유혹합니다. 카프카라는 소설가는 약함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세상 풍토를 풍자해서 변신이라는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은 벌레로 변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족들은 벌레가 되버린 자신들의 아들과 형제가 죽기를 바라면서 방치했습니다. 벌레가 되버린 혐오스러운 주인공이 죽어야지만 자신들이 수치를 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소설 말미에 벌레가 된 주인공이 죽고 나서야 소설의 분위기가 밝아지며, 가족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온함을 되찾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가난하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이들을 조롱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 못박히셨던 예수님에게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서 남을 어떻게 구원할거냐며 빈정거리던 사람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세상은 약함을 통해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비웃습니다.

6. 지난 오월 사제서품을 받기 전 4박 5일 동안 서품피정엘 다녀왔습니다. 넷째 날 피정을 인도해주신 신부님이 두 가지 과제를 내주셨습니다. 하나는 라브린스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십사처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르코복음서 수난장을 펼쳐서 읽으면서 제일처소부터 시작해서 각 처소마다 멈춰 서서 기도했습니다. 

로마군인들과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장면에 이르렀을 때 그들 속에서 제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갑질 사건들에 분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약함으로 다스리시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약함으로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서 약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약함을 통해서 하느님의 통치를 드러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도 수시로 하느님의 다스림이 아닌 제 뜻대로 하고자 하는 유혹 앞에서 넘어지곤 합니다. 

7. 우리 인생의 전 여정은 약함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다스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그 믿음을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이 믿음은 나 자신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믿음입니다.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내가 중심이 되지 않아도 충분한 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나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믿고, 나 자신을 하느님 나라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며 자족하는 훈련입니다. 나 중심의 세계관에서 왕이신 예수님 중심으로 우리 존재에 관한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중심이 아니고, 부분이라고 해서 나자신이 부차적인 존재가 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몸의 다양한 지체들이 각기 쓸모가 있고 모두 소중하듯이 그 모든 부분들이 소중하며 필요합니다.

8. 우리 신앙의 선배들 중에는 이처럼 약함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일생을 바치신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존경해온 믿음의 사람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분이 엊그저께 돌아가셨습니다. 지난 5월 신장암 말기로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셨던 목사님을 돌아가시기 얼마전에 만날 기회가있었습니다. 그분은 암투병 직전까지 노숙인들의 자활을 돕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이 일해오신 현장에서 사람들이 사람됨을 경험하고, 평등함을 경험하기를 소망하며 이 소망이 이뤄질거라는 믿음으로 지내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신학생 시절에 도시빈민선교회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가난한 이들 곁에서 살려고 일관되게 노력해오신 분이었습니다. 우연히 그 목사님과 학부 동기였던 목사님으로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노숙인들과 함께 지내던 그 목사님 아버지가 변호사셔서 다른 멤버들보다는 넉넉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친구와 함께 만든 동아리 구성원들을 가만히 보니 다 가난한 집 자녀들이라서 가족들과 휴가를 가본적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아버지께 후원금을 받아와서 가난한 동기들과 후배들을 데리고 해수욕장도 가고, 맛난 것도 사 먹이며, 비록 부모님 것이지만 집안살림을 퍼다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합니다.

일생동안 일관적으로 약한 이들 곁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스스로 약해지고, 평등하게 사람됨을 경험하는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주신 좋은 신앙의 선배였습니다. 이분처럼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길이 가능하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약함을 통해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 믿음을 굳게 붙들어서 갈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9. 약함으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은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만물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죄 사함을 위해서 더 이상 희생양을 바치지 않아도 됩니다.

희생양을 바친다는 건 내 죄를 희생양에게 부담 지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수난을 통과하심으로써 희생양을 만들고 희생양에게 죄 짐을 지게 하는 세상의 방식은 종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부활로서 그런 방식은 폐기됐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악이 만연해 있어서 여전히 희생양을 찾아서 헤매고 있지만,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악한 구조와 삶의 방식을 끝내시고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셨습니다. 이것을 저와 여러분이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어야지만,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비록 흔들려 넘어질지라도,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약함으로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모신 삶을 끝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다른 누군가를 희생양 삼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종말론신앙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준 그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다함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으며 세상에 나아가 약함 가운데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증언하시고 전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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