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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3주일 "하느님을 믿는 확고함"

작성일 : 2019-01-25       클릭 : 27     추천 : 0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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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믿는 확고함

 

김은경 드보라 신부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농구화를 신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던 강남 사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브랜드 농구화를 신고 있는 걸보고 부러워서 아 나도 농구화를 신고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철없던 저는 어린 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께 농구화를 사달라고 며칠간 졸라댔습니다. 평상시 뭘 사달라고 요구한적 없던 첫째가 그렇게 졸라대니 어머니는 돈이 모이면 사주겠다고 약속하시며 며칠만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리라던 그 며칠이 지나고 나서, 저는 어머니께 어서 농구화를 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직 돈을 다 모으지 못했으니 며칠만 더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농구화를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고, 결국 어머니가 회초리를 들고 나서야 조르던 걸 멈췄습니다. 하지만 농구화를 갖고싶다는 마음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서럽게 울고 있던 제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어디서 돈을 빌려오셨는지 결국 제가 원하던 리복 농구화를 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농구화를 신고 좋아하는 저에게 이제까지 어머니 자신이 약속한 것을 어긴 적이 있었느냐, 약속한 것은 다 지키지 않았느냐고 하시면서 엄마가 어련히 너가 갖고 싶다는 것을 사줄텐데 믿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라고 하셨습니다. 신고 싶던 농구화가 생겨서 흡족했던 터라 이제부터 믿고 기다리겠다고 대답하고 그 이후로는 어머니께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서 어머니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계시고 약속을 지키시며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이 약속을 계약이라고도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불러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고 계약을 맺으셨던 하느님의 약속은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믿음의 자손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제는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겠노라고 하느님께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이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립니다. 내가 언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했었냐는 듯이 살아갑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과는 상관없이 홀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각자도생하며 사는 거지 뭐! 라고 하며 하느님이 세상을 이기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상이 하느님을 이긴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세례받기로 결심했을 때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유아영세신자라면 견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교회가 나를 사랑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에 감격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도 신앙이 자라지 않으면 우리의 첫 사랑이 식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다보면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이 우리를 얼마나 생기 있게 해주었는지를 잊어버리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연약함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성서에 속의 많은 믿음의 자손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도 때로는 흔들렸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불러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이 하느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기억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바빌론 제국에 의해 주전 597년에 멸망했고 바빌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후 국제 정세가 바뀌기까지 그들은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지 약 오십년 만인 주전 539년에 하느님은 페르시아제국이 바빌론제국을 멸망시키게 하셨습니다. 세계를 재패한 페르시아의 황제 고레스는 바빌론 왕들과는 다르게 관대한 종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서 바빌론에 사로잡혀갔던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고레스 왕은 제국을 잘 다스리려면 모든 신들에게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레스는 바빌론을 정복한지 일 년이 지난 주전 538년에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새로 정비하라는 내용을 적은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빌론에 사로잡혀 와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첫 번째 귀향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레스가 칙령을 내렸을 때 포로로 잡혀가 있던 남유다 지도자들이 제일 먼저 떠올렸을 기억이 무엇이었을까요?

 

유다 지도자들은 모세오경에 정통한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고레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칙령을 내렸을 때 그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자기네 조상들을 출애굽시키셨던 신실하신 하느님을 떠올렸을 겁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잊고 있던 하느님을 믿었던 마음을 기억했습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자신들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하느님을 믿는 마음을 회복했을 때,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귀향을 이끌었던 지도자는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즈라와 페르시아 왕궁의 고위 관리로 있던 유다인 느헤미야 두 사람이었습니다. 에즈라는 규정에 맞게 제사 드리는 법과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살게 하는 일을 맡았고, 페르시아는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유다와 페르시아의 개혁 정책의 전권을 맡아서 수행했습니다. 하느님의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의 믿음의 사람 에즈라와 느헤미아를 통해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포로 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의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의 설날에 학자 에즈라에게 가서 모세의 법전을 읽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에즈라는 남녀 가리지 않고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려주었는데 온 백성이 그 법전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들은 에즈라가 하느님의 법전을 다 읽고 나자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리며 하느님을 예배했습니다. 그때 에즈라가 하느님의 법전을 해석해 주었을 때 온 백성이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50여년의 세월동안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나라 잃은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등시민으로서 차별받으며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여러분도 집을 떠나보신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셨을 겁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처럼 집을 떠난다는 건 그게 잠깐일 때는 낭만적일지 몰라도, 기간이 길어지면 고생하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자유의 몸도 아니고 포로가 되어 끌려간 상황이었으니, 그 설움을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고향땅에 다시 돌아옴으로써 포로 되었던 처지의 모든 설움이 끝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자신들과 약속을 지켜주셔서 이제는 하느님을 예배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이제는 남의 땅에서 종살이 하지 않고, 자유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처럼 하느님은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도 아브라함과 모세에게 맺으셨던 약속을 잊지 않으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약속을 완전히 잊어버릴지라도 하느님은 우리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연약하여 하느님과의 약속을 끊임없이 어기고 배신하여 떠나가는 걸 잘 아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는 약속을 성취할 수 없음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하느님과 한 분이신 성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직접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 성자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을 삶을 받아들이는 일이 우리 몫으로 남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 안에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던 예수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루가복음에 의하면 성자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세례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고 물리치셨습니다. 악마를 물리치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아서 갈릴래아에서 전도하셨고, 자신이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 611절로 2절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 성서를 펼쳐서 읽었습니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말씀을 다 읽으신 후에 예수님은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믿으셨습니다.

 

여기서 이미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결판났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있지 않으시고 주님의 성령이 자신에게 내리셨다고 믿으셨습니다. 하느님이 예수님 자신에게 기름 부으셨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 안에 계셨습니다. 하느님께 보냄 받았다고 하는 믿음이 예수님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성령 충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도, 묶인 사람들을 해방을 알리지도, 눈먼 사람을 보게 하지도, 억눌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지도 못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할 능력을 수행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시험 대비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시험을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게 무엇이며, 모르는 게 무엇인지 가늠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믿고 자신감 있게 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이처럼 자신감을 갖게 하는데, 하물며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믿음의 선조들과 성인들이 이 믿음의 길을 지켜나갔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본받아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믿음의 길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응답했습니다. 서로 힘을 내서 신실하신 하느님을 믿는 확고함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바이킹 타는 걸 굉장히 두려워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신학생 시절에 학생회 아이들을 데리고 에버랜드에 놀러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바이킹을 타고 싶어 해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바이킹을 탈 때는 몸에 힘을 쭉 빼고 타야 재미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가 매우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길래, 저도 한 번 몸에 힘을 쭉 빼고 타봐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바이킹을 탔습니다. 처음에는 습관대로 몸에 힘을 꽉 주고 무서워서 소리 지르고 있는데, 바이킹을 탈 때는 몸에 힘을 쭉 빼고 타야 재밌다 던 아이가 저에게 몸에 힘을 빼세요.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몸의 힘을 빼고 바이킹에 저를 맡겨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신기하게도 몸이 가벼워지면서 공포심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 주님께 의지하는 것이 어쩌면 바이킹을 탈 때 힘을 빼고 흐름에 맡기는 것과 같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혼자 해보겠다고 힘을 잔뜩주고 살기보다는 그 힘을 하느님께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일산달팽이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는 샘이 마를 때라는 책에서 저자 토마스 그린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위대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은 힘주어 수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의 바다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세워가기 위해서 수만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나가기 위해서 정작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겁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기셨습니다. 아직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맡기는 게 두려우시더라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함께 하느님께 우리를 내어맡기는 훈련을 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에즈라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달라고 요청했던 이들처럼 하느님의 말씀 읽는 것에 마음을 쏟으시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맡기는 훈련을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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