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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받은 은혜

작성일 : 2017-10-22       클릭 : 121     추천 : 0

작성자 안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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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에서는 높은 수준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실천을 강조합니다. 산상수훈에 이어 일곱 번씩 일흔 번의 용서는 자비와 사랑, 용서의 절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 결코 다다갈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삶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기쁨을 상실하고, 의무감, 책임감에 짓눌리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요한 사도가 말하는 사랑,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신사랑을 되새겨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3;18-19)있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우리가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할 곳은 1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엄하게 침묵을 명령하시곤 하였습니다. 침묵을 통해서만 깊이 감춰진 것,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너무 성급하게 자기 밖으로 뛰쳐나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 몸, 맘에 스며들 때까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나에게 유익했던 것들, 나에게는 모든 것을 장해물로,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라고 바울과 같이 선포할 수 있습니다. 이 자리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2;20)라는 고백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백 데나리온의 빚진 사람의 빚을 탕감할 수 있습니다. 그 빚진 자는 밖으로 향했을 때는 우리의 이웃, 주변의 사람들이지만, 내면으로 향했을 때는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 허물을 자신의 틀 안에, 자신의 어두운 감옥 안에 가두고 살아갑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23;34)라는 기도의 실천적 삶이,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는 일이요, 이런 삶이 주의 기도를 삶 속에서 완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이 이웃을 용서할 수 있고, 이런 용서가 이루어질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과 땅이 합일을 이루는 순간이 됩니다.

요셉은 자신의 생각을 살지 않았고, 하느님의 말씀,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기에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 대신 벌이라도 내릴 듯싶습니까?" "나에게 못할 짓을 꾸민 것은 틀림없이 형들이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도리어 그것을 좋게 꾸미시어 오늘날 이렇게 뭇 백성을 살리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형들과 형들의 어린것들을 돌봐 드리리다." 라며 용서를 넘어 자비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나 없이 살게 하고,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몸을 입고 살게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는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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