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펴라!
안식, 쉼에 대해 마르코는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막6;31)고 하셨는데, 이 쉼이 참된 안식의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분주함의 자리에서 단순함의 자리로 옮겨져야 합니다. 분주함의 자리는 탐진치로부터 나오는 생각,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식,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머리의 자리이고, 단순함의 자리는 마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인 측은지심의 자리입니다. 참된 안식은 온갖 분주함과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선을 행하는 일, 곧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 곧 착한 일, 살리는 일을 하는 자리입니다. 나 없음으로만 살 수 있는 자리로, 자신의 옳음과 판단, 경계를 넘어서 마음, 측은지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고후6;8,10) 이러한 삶을 독생자, 곧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삶,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쳐 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삶을 말합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롯이 굶주림에 지쳐있는 다윗의 일행을 보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들을 맞아들인 에비아달 제사장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그들에게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빵을 제공하여 그들을 살렸습니다. 이렇게 가슴, 마음으로 사는 삶이 안식의 주인이 된 사람입니다.
밭에서 회당으로 들어가심은 밖으로 향했던 시각과 관점을 심연, 내면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밖으로 향했던 눈은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라면, 회당에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편심, 분주함입니다. 오그라든 손은 오그라든 마음, 완악한 마음입니다. 지나치게 주변을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펼치지 못하고 억압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를 대변하는 머리, 지식과 자기 의로 판단하려는 논리와 합리적 욕구가 있는 반면, 대립하고 있는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내면으로 향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보화, 양심, 선한 열정과 갈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행한 자유와 능력과 권한이 있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깊이 마음을 성찰하실 때만이 그런 마음이 보입니다. 왜 오른 손, 착한 마음을 펴지 못하고 오그리고 있는가? 일어나 앞으로 나와 손을 펴야 합니다. 손을 펴는 것은 마음껏 선한 열정과 갈망, 착한 마음을 실천하는 용기와 결단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5;45,48)이것이 오른 손이 펴진 사람, 손을 폄으로 온전함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폄으로 아버지처럼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경계를 넘어 사는 사람, 안식일의 주신, 독생자가 되어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와 신앙 / 생활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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