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다해 연중17주일)
작성일 : 2022-07-24       클릭 : 21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724 다해 연중17주일

호세 1:2-2:1 / 골로 2:6-15 / 루가 11:1-13

 

 

 

구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일반적으로 종교는 경전과 예식이라는 눈에 보이는 도구와 교리와 기도라는 눈에 보이진 않는 도구를 통해서 인간과 초월자 간의 연결 그리고 종교집단 내 구성원들 간의 결속을 유지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도는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볼 수 없는 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입니다. 그래서 각 종교마다 다양한 기도방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역시 오랜 역사를 통해 터득한 여러가지 기도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가장 대중적이고 행하기 비교적 쉬운 기도가 염경기도(念經祈禱)입니다. 염경기도란 일정한 기도문을 소리 내어 바치는 기도인데, 교회나 다른 이가 만들어 놓은 기도문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은 주의기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만들어주신 가장 대표적인 염경기도입니다. 또한 성공회 기도서 뒷부분에 있는 주요기도문에 나와 있는 성호경, 성모송, 송영, 삼종기도가 있으며, 묵주기도 역시 오랫동안 많은 신자들이 애용하고 있는 염경기도입니다. 특별히, 성공회 신자들과 천주교 신자들은 교회가 전해주는 여러 염경기도문들이 많고 이것을 통해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자유롭게 기도하는 것보다는 염경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것을 편하게 여깁니다.

다음으로 자유롭게 말하는 기도방법입니다. 가장 짧은 기도인 화살기도에서부터 큰 소리로 기도하는 통성기도(通聲祈禱)’, 그리고 성경에선 이상한 언어라고도 하는 방언기도(tongue prayer)’가 있습니다. '화살기도(ejaculatory prayer)'는 갈급하게 그때그때 느끼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주님께 짧고 간단하게 말하는 기도입니다. ‘통성기도는 한국기독교에서 시작한 독특한 기도인데 영어로 Korean prayer, 한국식 기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록으로는 1907년 장로교 길선주 목사가 평양대부흥회에 공식적으로 처음 도입하였다고 합니다. 길선주 목사는 기독교 신자가 되기 전에 무속을 비롯해 도교와 불교 등에서 수행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산에 올라 큰 소리로 기도 수행하던 우리네 전통기도방식을 기독교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오늘날 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한국의 적지 않은 교회에서 큰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이 서양 기독교인들이 볼 때 낯설어 보였는지 한국식 기도스타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통성기도를 강조하는 기독교 교단에선 방언기도도 매우 중요시 여깁니다. 심령기도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방언기도는 신약성서에 성령강림 이후,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상한 언어로 기도했다는 데서 유래합니다. 오늘날에는 성령체험과 성령은사를 강조하는 기독교 교단에서 통성기도와 방언기도를 할 줄 알아야 기도잘한다고 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침묵기도 방법입니다. 이 기도방법은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성공회와 같은 수도회 영성을 간직하고 그러한 전통 안에서 숙성되어 전해져 오고 있는 기도방법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기도, 침묵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깨우치는 '묵상기도(Meditation Prayer)', 그리고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비우면서 그 안에서 주님과 일치를 지향하는 '관상기도(Contemplation Prayer)' 등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QT(Quiet Time)'라고 부르는 기도방법도 사실 거룩한 독서와 묵상기도라는 교회의 침묵기도전통을 응용한 것이며, '향심기도(Centering Prayer)' 또한 수도자들이 오랫동안 해오던 관상기도를 현대인에 맞게 소개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교회는 2000년 역사를 거치면서 풍요로운 기도전통과 영적유산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이 모든 기도를 한마디로 이름 붙인다면 청원기도(請願祈禱 prayer for petition)’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떤 분들, 특별히 신학을 공부했거나 영적수련을 하신 분들, 일부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분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이며 적어도 그러한 영적각성 내지 깨달음이라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루가 11: 10)”라는 말씀은 아직 신앙의 초심자들이나 하는 기도이며, 신앙이 깊을수록 이렇게 달라고 하는 기도에서 탈피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는 기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절대성과 무한하심 앞에서 인간의 수준이란 오십보백보처럼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마치 광대한 우주공간과 우주역사를 대면한 인간이 초라한 자신을 보듯이 말입니다. 시편 저자는 이러한 인간실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숨결에 지나지 않고 높다는 것도 거짓말, 모두 합쳐 저울에 올려놓아야 역시 숨결보다 가볍다.(시편 62:9)”

이처럼 깃털보다 가벼운 우리이기에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하느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과 은총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며, 그 보호하심과 안배하심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원초적인 이유로 우리는 매일매일 주님께 구함을 청하고, 주님을 찾고, 하늘나라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것도 간절히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한밤중에 손님이 와서 내놓을 것이 마땅치 않자 친구 집에 가서 손님에게 대접할 빵을 구한 사람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러면서 귀찮게 졸라대는 심정으로 하느님께 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간 속에 감추어진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뢰 혹은 믿음입니다. 이것은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의기도앞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루가 11:2)” 주님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모범이 되는 주의기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하신 것이 바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그러한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가장 우선적이어야 하면은 내가 기도하는 대상을 이와 같이 신뢰하고 받아들이고 믿지 않으면, 내가 드리는 기도 역시 아무런 진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한밤중에 찾아가 끈질기게 간청한 사람이 이 친구야 말로 지금 내가 간절히 청하면 들어줄 내 구원자이다라는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애당초 찾아가지 않았거니와 찾아가서 요청했더라도 안돼!”라는 한마디에 금방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 기도가 기도다우려면 당신은 나의 하느님이요, 나는 당신의 나라를 믿습니다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기도의 원리와 기초입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오늘 제2독서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박고 그 터 위에 굳건히 서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여 넘치는 감사를 하느님께 드리십시오(골로 2:6-7)”

이제 이러한 기초 위에 우리는 주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청원기도를 일회성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끈질기게 인내심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의지력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내와 끈기를 키워나가듯이, 주님도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때론 즉각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고통스럽지만 의지를 가지고 기도하며 우리의 신앙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나에게 진정으로 주시려는 것이 뭔지 그리고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선물이 뭔지 찾게 됩니다.

이 선물에 대해서 오늘 복음 말미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알려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루가 11:13)”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어느 날, 현자와 악마가 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 가던 어떤 사람이 길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워 자기 가방에 넣고 신나서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을 봤습니다. 현자가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주운 저 보물은 뭡니까?” 그러자 악마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한 조각입니다.” 현자가 잘 되었네요. 그는 참 행복하겠군요라고 하자, 악마는 그런데 그는 그 보석에 만족해 더 이상 길을 가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가 길을 더 갔다면 그는 더 많은 진리의 보석을 발견할 텐데…….”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 때, 우리는 때론 달걀과 생선을 달라고 할 때도 있고, 때때로 다른 것을 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 즉 당신자신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서 제시한 우화에 나오는 사람처럼 보석 하나 들고 하느님께로 가는 큰 선물의 여정을 중도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할 것은 성령, 즉 하느님을 선물로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목마르지도, 배고프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궁극적으로 다다를 목적지입니다.

우리에게 참다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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