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서울교구 미래선교 방향설정을 위한 제언(2022년 9월 27일 서울교구 성직자 워크숍)
작성일 : 2022-09-29       클릭 : 175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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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AD의 기로에서

-서울교구 미래선교 방향설정을 위한 제언-

 

 

 

 

 

 

시작하며

 

너희는 하늘과 땅의 징조는 알면서도 이 시대의 뜻은 왜 알지 못하느냐?(루가 12:56)”

 

서양역사분류의 영향으로 인해 인류는 역사를 구분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로 나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혹자는 우리의 일상이 BC(Before Corona), 즉 코로나 이전과 AD(After Disease), 즉 코로나 이후로 나눠지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는 더 이상 BC로 되돌아 갈 수 없으며, 그러기에 이전에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상식적으로 되는 뉴노멀(New Normal 新常態)’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BCAD라는 국면전환은 비단 2000년 전이나 오늘날에만 있지 않았다. 서구 역사에서 흑사병과 이어서 나타난 금속활자의 발명이라는 의학적이고 기술적 사건은 중세와 근세를 가르는 커다란 문명사적 ‘BC/AD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흑사병으로 인해 모이는 각종 종교예식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성직자중심 혹은 교회중심의 구원관이 흔들리고, 외적의식보다는 개인의 내면에 대한 추구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의 중재와 간섭 없이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근대신심운동(Devotio Moderna)이라는 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활자의 발명으로 성서와 신학과 신심서적들이 성직자들의 독점에서 대중에게로 보급되는 지식의 보편화가 열리면서 종교개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BC/AD, 뉴노멀 시대의 도래는 어쩌면 하나의 시대의 징표일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징표를 잘 읽기 위한 몇 가지 이론적 틀

 

1. 위험사회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1986위험사회(Risk Society)를 출간했다. 거기서 그는 위험사회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위험은 전염성이 강하다. 둘째, 위험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셋째, 과학의 발전에 비례하여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다. 넷째, ‘안전의 가치가 평등의 가치보다 중요해진다. 다섯째, 시민들의 불안이 증가함에 따라 안전은 물이나 전기처럼 공적으로 생산되는 소비재가 된다. 그는 위험사회론에 기반하여 글로벌 위험사회론으로 논의를 확장하였다. 이제 위험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그가 주목하는 세 가지 글로벌 위험은 기후변화와 같은 생태적 위험,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 위험, 자살폭탄 테러와 같은 테러의 위험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몇 십 년 전 그의 우울한 예측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2. UN회의와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

21세기 새천년(New Millennium)을 앞두고 노스트라다무스 등과 같은 예언과 각종 종말론이 횡행하던 가운데, 유엔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면서 3대 분야를 정하고 국제회의를 하였다. 첫째는 환경 분야인데,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UN환경개발회의에서부터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기후회의까지 국제사회는 3대 협약을 체결하였다. 둘째는 여성 분야인데,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UN여성대회에서 남녀구분개념을 sex라는 생물학적 용어가 아닌 gender라는 사회학적 용어로 대체할 것을 공식결의하고, ‘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통해 정부 내 각종 정책에 성평등이 반영되도록 하는 등 커다란 전기를 가져왔다. 셋째, 도시와 문명(문화)에 대한 분야인데,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도시회의는 주거권을 비롯한 전 지구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문제를 다루었다. 이상 세 개의 분야를 통해 UN17개 인류 공동목표를 잡았고, 현재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정부를 비롯하여 기업, 종교, 민간단체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미래비전의 핵심요소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3. 패러다임 이론

패러다임(paradigm)이란 원래 언어학에서 파생되는 단어의 기본형을 뜻하는데, 오늘날 널리 쓰이게 된 계기는 토마스 쿤(Thomas Kuhn, 1922-1996)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에서 사용하면서부터이다. 쿤에 따르면, 과학사의 특정한 시기에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과학자 집단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모범적인 틀이 있는데, 이 모범적인 틀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전혀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연과학 위에서 혁명적으로 생성되고 쇠퇴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혁명은 바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신학에 적용한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이다. 그는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Christianity: Its Essence and History)에서 6가지 패러다임으로 그리스도 신학사를 구분하였다.

 

4. 생태학과 여성학 그리고 통합의 영성

2차 세계대전 이후, 남미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제3세계 지역에선 서구세계 중심의 발전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종속이론, 세계체제이론이 주장되었고, 이것은 신학에도 영향을 주면서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1세계가 되었던 2세계, 3세계가 되었던 발전과 성장에 대한 추구는 자연환경 훼손을 초래하였으며, 인류는 지금까지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하기 시작하였다. 생태학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하였으며, 더불어, 인간 특히 남성중심적 정복/피정복위주가 아닌 여성, 아동, 유색인종, 성소수자, 여러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재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들이 자연스럽게 결합된 것이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이다. Eco(생태)Feminism(여성주의)라는 단어를 연결해 사용하는 생태여성주의는 1970년대 사회문화적 관습과 질서에 대한 지배적, 억압적 운동에서부터 성립되었다. 1974년 생태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페미니스트 프랑소와즈 드본느(Françoise d’Eaubonne, 1920 - 2005)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이원론 중 특히 여성의 억압자연의 억압이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을 통해 그 문제의 근거로 가부장적인 세계관을 지목하며 이를 비판-해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오늘날 신학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사상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신학적으로 편향된 상징개념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모색하고 있다. 예컨대, 성경에서 창조에 대한 해석을 종래에는 땅을 정복하고, 여성을 남성 옆구리에서 나온 보조물로 보며, 인간의 '원죄(Original Sin)'로 인한 타락을 강조했다면, 창조주 하느님이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을 하셨다는 원복(Original Blessing)’이 더 근원적이라는 것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여성을 보혜사(保惠師) 성령과 같은 단어인 협조자(παράκλητος)’로 묘사하면서 남성과 여성관계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상호연결성, 상호의존성을 드러내는 성사(聖事)로 재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근현대사와 대한성공회에 대한 간략한 회고

1889111Westminster Abby에서 Charles John Corfe(한국명: 고요한)신부가 조선의 초대주교로 서품받은 날을 기점으로 할 경우 대한성공회는 올해로 133주년이 된다. 이 기간은 우리역사에서 있어서도 엄청난 격동의 시기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처럼 21세기 새천년 그리고 COVID-19로 새로운 교회비전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그 속에서 미래에 필요한 정신적 유산을 발견하는 것 역시 의미있다고 하겠다. 이런 맥락에서 앞서 제시한 패러다임이론시각에 비추어서 대한성공회의 과거를 우리역사의 맥락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1. 구한말 ~ 일제 강점 전반기와 대한성공회

19세기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아편전쟁은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오랫동안 지탱해 온 중화질서가 무너짐은 물론이거니와 한자문명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이 흔들리는 엄청난 문명의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한중일 삼국 중에서 오랫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무역을 통해서 어느 정도 세계정세를 알고 있던 일본은 중국과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서구화의 길로 이행했으나 중화세계관이 강하게 남아있던 조선의 첫 반응은 쇄국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는 서구의 밀물에 대한 조선의 강력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법! 결국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발로 서구열강들과 연이어 조약을 맺고 문호를 연다. 덕수궁이 있는 정동은 바로 구한말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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