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인간의 규칙, 하느님의 법칙(루가4:16-30)
작성일 : 2017-09-04       클릭 : 187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가해 연중22주 월요일 (루가 4:16-30)

 

인간의 규칙, 하느님의 법칙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것 보다는 오래된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인간사회에 있는 많은 규칙들은 이러한 우리의 익숙함과 그에 따르는 편안함과 안전함에 근거해서 만들어 집니다. 만일 어떤 규칙이 이러한 익숙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담아 낸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심지어 그 규칙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규칙이 단지 우리의 익숙함과 그에 따른 편안함만 따라 간다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편안함과 안전을 위해 만든 규칙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것을 깨고 나와야만 하는 모순을 갖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생각할 때, 저는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라는 책에서 언급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다수가 추종하는 기존의 문명, 문화, 또는 어떤 규칙에 대하여 창조적 성향을 가진 소수가 도전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수의 아들 예수께서는 자신의 고향 나자렛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이사야 서를 읽으시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예수께서 읽으신 성경구절의 맥락을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자신의 선조들이 바빌론 유배생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귀환할 때 불렀던 환호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로마와 헤로데의 압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대목을 들으면서도 아주 먼 옛날의 아름다운 추억이자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일종의 유토피아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 이미 익숙해져서 현 질서의 규칙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기에 이사야 서의 그 말씀에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에게 예수께서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반기를 드십니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예수님은 도전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당돌한 선언에 내심 놀라기도 하고, 그분의 설교에 탄복하면서도 반발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이 말속에 담긴 의미는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요? -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다고? 감히 로마제국과 헤로데가 정한 규칙에 도전을 하겠다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당신이나 우리나 별반 차이가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인데, 뭐가 잘 나서 그런 당돌한 말을 하는가?”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도전적 언사를 던지십니다. 예수님의 도전에 화가 난 사람들은 그분을 동네 산 벼랑으로 끌고 갑니다. 예수님의 도전에 마을사람들의 응전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지나서 자기의 길을 가십니다.”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인간의 규칙이 금이 가기 시작하고, 이제 하느님의 법칙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선포하신 메시아 시대를 실현하시기 위해 그 발걸음을 떼신 것입니다.

현상에 매몰된 인간의 규칙이 예수님의 도전으로 하느님의 법칙을 구현하기 시작합니다. 그 법칙이란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을 풀어주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歷史(History)를 관통하는 하느님의 役事(Works)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인간들이 정하고 안주하고 있는 규칙을 초극하고 당신의 법칙을 완성해 가십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추종하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규칙에 안주하고 거기에 사로잡혀서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법칙을 보여주시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지 예수님만 가신 길이 아닙니다. 우리도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그 길이 편안한 규칙에 젖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설사 불편하더라도 일어나서 따라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한한 인간이 만든 규칙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느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만이 나와 우리 모두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를 여는 이 아침 감사 성찬례를 통해 새 시대를 여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빌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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