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중국사역을 마감하면서(20171207)
작성일 : 2017-12-07       클릭 : 325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예레 1:4-12 / 시편 42:1-5 / 루가 19:29-40

 

중국 사역을 마감하면서

짧게는 2010년부터 2016년 초까지, 길게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중국사역을 마무리하며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신부님과 교우님들과 감사성찬례를 봉헌하게 되어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이 감사성찬례에 봉독 할 성경말씀을 고르면서 그 동안 겪어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2000615일 신대원생 시절 저는 평양 순안공항에서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정상이 악수하는 장면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기도할 때 저는 중국이란 단어를 떠올랐고, 마침 그 무렵 방통대 중문과를 다니던 제 아내가 중국에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해서 속으로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 중에 그 일이 있고나서 저는 중국과 중국교회에 대해 알면 이북과 장차 이북선교를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중국사역은 이렇게 해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르심 받았을 때처럼 아이와 같은 상태였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가져온 어린 나귀 와도 같았습니다. 참으로 아무 것도 모르고 그러기에 그런 모험을 감히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 후, 정철범 주교님께서 우리 교단에 중국전문가가 필요하니 공부하라는 명을 주셨고, 마침 예수사랑선교회에서 해외선교를 위해 기도와 봉헌금을 전해 주신 덕분에, 대한성공회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선교자금이 아닌 순수 국내 신도들의 헌금으로 해외유학을 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정철범 주교님과 예수사랑 선교회 신부님과 교우님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2006년에 귀국하여, 저는 광명, 대성당, 간석교회와 신월동 지역아동센터 그리고 나눔과 평화재단에서 시무하면서 부제와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 무렵, 중국 남경에 있는 국가 급 신학교에 교수요원으로 성공회 성직자를 보내기로 영국성공회가 중국교회가 합의하였고, 이 일로 교회선교회(CMS) 서울 사무소에서 면담을 하였는데 저는 여기에 자원하였습니다. 이 때 서울사무소 소장이신 나성권 신부님께서 이 일이 성사되도록 많은 애를 써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경조 주교님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여러가지 이유로 이 일을 결국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김근상 주교님 때, 영국CMS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성 중 하나인 귀주성 신학교에 파송하는 걸로 서울교구와 협의했지만 서울교구의 의지부족으로 이것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합법적으로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든 경로가 막히게 되었고, 저는 주님의 부르심이 아니라고 여기고 생각을 접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신자가정의 기도와 후원으로 극적인 계기가 마련되었고, 이 보고를 들으시고 주교님이 이 선교자금으로 갈 수 있다고 여기시고 허락해 주셔서 다시 중국선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20103월 저희 세 식구가 중국 천진 땅을 밟았을 때,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저는 우선 여기서 뿌리내리기 위해 여러 대학의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 천진사범대학과 천진상무학원에서 교편을 잡게 되어서 비자문제 해결과 약간의 경제적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중국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신문사 특파원도 하고, 대학교재도 출판하고 때로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의 통역사도 하다가 나중에는 그들을 위한 컨설팅도 하게 되는 등, 여러가지 사회경험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낯선 땅에서 교회라는 제도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을 통해 저를 훈련시키시고 폭넓은 안목과 인생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시편말씀처럼 저는 한편으론 낙심과 불안과 고독으로 심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제로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보장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한국의 교회 와도 마치 잊혀진 존재처럼 되었다는 점이 저를 우울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물질적으론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나 영적으론 사막과도 같은 곳이라고 여기던 중국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역사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때때로 중국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는 교회지만 신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그 중에는 우리 성공회 전례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중국 목회자 그룹도 생기게 되었고, 실제로 이들은 자생적으로 자신들의 교회에서 성공회 전례를 거행하고, 성공회 기도서를 편찬하고, 다른 지역 목회자들과 신도들에게 알리고 교육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국인구규모와 문화혁명 기간 중 극심한 박해를 이겨낸 중국인 신자들의 저력으로 볼 때, 장차 중국교회는 아시아의 그리스도교를 선도하는 맏형으로 우뚝 솟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2016년 저는 오랜 중국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까지 올 여름 귀국해서 중국에서의 사역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교구의 교육훈련국과 선교국을 책임 맡고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구는 지금 참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적된 과거의 관행과 변화된 사회환경으로 교회의 사목은 예전보다 훨씬 힘들게 되었습니다. 다시 교회를 새롭게 재건해야 될 시점입니다.

교구에서 일하면서 저는 종종 주님께 묻습니다: “저를 여기로 오게 부르신 이유가 뭔가요? 저는 아이라서 이 힘든 일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입니다.”

그럴 때마다 루가 복음의 말씀, “주께서 쓰시겠답니다와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 주리라.”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중국사역을 마감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 교회를 위해 주님께서 하시려는 것이 어떤 건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이 와도 같은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는 나귀가 되어 주님을 모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입성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고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교회도 예루살렘처럼 영광과 고통이 공존하고 있는 곳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우리의 본성은 고통보다 영광을 원하지만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선 고통이라는 인내의 시간을 잘 견뎌내야 할 것입니다.

이 감사성찬례가 하나의 매듭을 짓는 자리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다시 순례의 여정을 떠나야 할 것입니다. 이 순례의 여정은 우리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전쟁의 공포가 어느 때 보다 높은 한반도에 평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주님의 깊은 섭리로 가는 여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한번 중국사역을 위해 기도와 후원을 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사역을 기획하시고 이끄시고 우리를 한데 불러 모아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성가>

입당 406 / 봉헌 498 / 파송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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