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내면 깊은 곳에서 갈구하는 뜻밖의 선물(부활1주간 수요일)
작성일 : 2019-04-24       클릭 : 31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부활1주간 수요일

사도 3:1-10 / 시편 105:1-9 / 루가 24:13-35

 

 

내면 깊은 곳에서 갈구하는 뜻밖의 선물

 

 

30년 전, 제가 대학생 시절에만 해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율은 두 자리수 이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생들은 먹고 살 걱정보다는 민주라던지, 정의라던지 하는 큰 담론을 논하고, 그런 대의를 어떻게 실천할 건지를 고민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졸업하면 대부분 취직이 되었으며 무엇을 해도 나아질 것 같은 사회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떻습니까? 부모님의 직장은 불안정하고, 졸업 후 취업사정도 좋지 못해서 늘 불안을 안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상장 시대, 수축사회에선 자기 내면을 지키는 것도, 꿈을 따르는 결정을 하기도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치보다 현실이 앞서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 등장하는 성전 문 곁에 있는 앉은뱅이 걸인과 실의에 빠져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걸어가는 두 명의 제자들은 마치 오늘날 꿈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먼저, 오늘 들은 사도행전의 장면을 봅시다. 성전 문 곁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목표는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이 베푸는 약간의 적선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우리를 좀 보시오라고 하자, 그는 평소처럼 무엇을 좀 주려니 하고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는 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 가시오하며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성전을 들어가 껑충껑충 뛰면서 하느님을 찬양하기 시작하였습니다.(사도 3: 1-9)

사실, 그의 깊고 깊은 꿈, 열망, 가치는 온전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허무맹랑한 것이었기에 그는 그저 하루하루 사람들의 적선에 기대어 연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은 그의 내면 깊숙이 잠들어 있던 가치와 꿈을 흔들어 깨워서 다리와 발목에 힘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가치를 회복한 그는 너무 기뻐서 제 발로 성전에 들어가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희열을 만끽합니다.

두 번째 장면을 봅시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모든 꿈이 물거품 되어 버린 그들은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습니다. 성서는 그들이 그 즈음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토론하며 걸어가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제삼자처럼 말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믿고 따랐던 스승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어쩌면 자신들에게 닥칠 지도 모를 위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 등등. 실로 복잡하게 꼬여버린 현실과 대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부활한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말을 거시고 여러 가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엠마오의 어느 집에 함께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실 때, 예전에 늘 하셨던 그 모습,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눠주십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그 분이 스승 예수시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예수님이 사라지자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라며 서로의 마음을 고백합니다.(루가 24:13-32)

꿈을 상실한 현실 속에서 생존을 찾아 길을 떠난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과 빵을 나눠주시며 그들 기억 저 밑에 가라앉은 스승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 가졌던 꿈, 열망, 참된 가치를 복원시켜 주십니다. 이제 그들은 도망치고 회피하지 않고 꿈과 가치를 빼앗긴 장소,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진정한 내면의 힘이 생긴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자주 어떤 직장에 취직하겠다, 돈을 얼마나 모으겠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겠다,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겠다라는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성과를 달성하는 데 매몰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들이 잘 달성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충분한 노력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목표를 달성했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도 없고 명예가 있어서 나쁠 것도 없습니다. 성과를 위해 몰두하는 것은 멋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목표만을 향해 달리는 것이 지친다고. 잘 사는 법은 알 것 같은데, 왜 사는지 잘 모르겠다고.

부활시기 오늘 성서에 나온 두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 그 너머에 있는 가치를 생각해 봅니다. 그 가치는 그 너머에 있다기 보다는 사실 우리들 깊은 곳에 있을 지도 모릅니다. 너무 깊이 있어서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있던 우리본연의 모습을 일깨우고 회복시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치 앉은뱅이 거지가 다시 일어나고, 절망과 두려움 속에 도망치던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부활한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오십니다. 여러분이 잊고 살고 있던 것은 무엇입니까? 기적이라는 뜻밖의 선물은 기실 여러분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을 꺼내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 선물과 만날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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