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목자의 목소리를 담은 씨앗 (요한 10:22-30)
작성일 : 2019-05-12       클릭 : 330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0190512 성서와 함께>

 

목자의 목소리를 담은 씨앗 (요한 10:22-30)

    

 

    

 

성서에는 두 가지 문화적 배경이 서로 혼재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는 유목문화를, 또 어떤 이야기는 농경문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문화배경을 갖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의미를 음미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도 이와 같은 점이 발견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 논쟁하시는 예수님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오는 양들을 비유삼아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그 어떤 악의 힘도 그들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의미가 공간복음(마르코, 마태오, 루가)에서도 나옵니다. 바로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님은 농부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부류는 유목문화를 바탕으로 한 오늘 이야기의 구조보다 더 복잡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게 속한 양이냐 아니냐라는 명확한 진영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상태가 길바닥일 수도 있고, 돌밭일 수도 있고, 가시덤불일 수도 있고, 좋은 땅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복잡한 기후와 토양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농사의 어려움이 더 반영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목자와 양을 연결하는 매개는 바로 목자의 목소리(요한10:27)’입니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양들은 따라가지 않고, 오직 자신을 돌보는 목자의 소리에만 반응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유목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 속에 나타난 하느님과 사람 간의 관계는 선명합니다. 그에 반해 농부와 밭을 연결하는 매개인 (마르4:14)’는 좀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밭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일 수도 있고, 또는 그러한 사람이 처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무리 농부가 씨를 뿌려도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입니다. 길바닥 같은 마음상태라면 바로 탈취당해 버리고, 돌밭 같은 상태라면 해 뜨자마자 싹이 말라 죽어버리고, 가시덤불 속에 있는 상태라면 걱정근심으로 질식해 버릴 뿐입니다. 오직 좋은 밭에 떨어져야만 30, 60,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씨 뿌리는 것은 목자와 양처럼 한 소리에 응답유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사람들의 상태뿐만 아니라 열매가 열리기까지 길고 긴 인고의 세월도 견디어야 합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과정입니다. 그렇지만 그 성취는 단지 목자를 따르는 것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또는 많은 사람과 생명체에 크나큰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놀라운 차원으로까지 변모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목자와 양의 관계가 하느님을 향한 충성된 추종을 강조한다면, 농부와 씨와 땅의 관계는 하느님 선교가 가져다주는 놀라운 성과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비록 일견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구조이지만, 서로 통하는 맥락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런 뜻이 아닐까요? , 예수님은 당신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말씀의 씨앗을 우리마음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씨앗을 잘 받아들여서 좋은 열매를 내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그 목소리에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처럼 마음을 조이거나 곤혹스러워하면서 정체를 분명히 밝히라고 다그치시나요, 아니면 그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삶 속에서 잘 가꾸고 계시나요? 어쩌면 우리 안에 두 개의 태도가 갈라지는 지점은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입니다. 신뢰가 있으면 행함이 있을 것이요, 불신이 있으면 여전히 곤혹스러운 상태로 머물 것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결과는 판이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10:28)-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부활의 신앙을 사는 이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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