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5일 오늘의 말씀: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오늘의 묵상: 봉헌된 존재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서품식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안수를 받기 전, 서품자들은 엎드려서 주님께 자신들의 전(全) 존재를 봉헌합니다. 세상 그 어떤 것에 복종하겠다는 것도 또는 나의 일부분만 드리는 것도 아닌 오직 나를 불러주신 주님께만 온전히 내 존재를 바친다는 비장한 예식입니다. 아주 오래되서 정확힌 기억나진 않지만, 저는 그때 사도 바울이 하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전 존재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될 때의 제 모습과 구차할 때 제 모습을 달리 볼지 모르지만, 오직 당신만이 저를 온전히 보시고, 사랑해 주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이제 제 전부를 바치오니 받아주소서.” 서품식 때 땅에 엎드려 드렸던 이러한 비장한 ‘봉헌기도’가 세월의 흐름 속에 빛바랜 사진처럼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지향이 오로지 ‘주님의 영광만을 위하여’라기 보다는 내 것도 챙기고, 주님 것도 챙기려고 타협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면서 “젊었을 때는 주님께 드릴 것이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당신께 바칠 것이 많아지지 않았습니까!”라고 변명도 해 보지만, 제 내면 깊은 곳에서 성령께서 “나는 네가 얼마나 더 많이 나에게 바친다는 것에 기뻐하지 않는다. 너의 그러한 태도는 결국 너를 갈라지게 할 것이다. 나는 오히려 네가 지향하려는 그 인생의 방향, 존재 그 자체가 분열되지 않고, 내 안에서 온전히 일치되어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곤 합니다. 오는 복음에서 주님은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서 얼마를 바치는 모습보다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모습에 주목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봉헌의 양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봉헌의 의향을 보십니다. 그렇기에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그 분께 전 존재를 헌신했던 과부의 신앙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오래전 서품식 때 했던 나의 봉헌기도를 되새겨 봅니다. 갈라지지 않은 순수한 나를 되찾고 주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간구해 봅니다. 오늘의 기도: 가난한 과부처럼 저도 전 존재를 봉헌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