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7 다해 연중 제8주일 이사 55:10-13 / 1고린 15:51-58 / 루가 6:39-49 고난 속에서 희망을 실천하기 현재 강화대교 입구에 강화기독교역사기념관이 완공을 앞두고 마무리작업이 한창입니다. 강화의 기독교 역사를 소개하고 전시하는 공간인데, 감리교를 비롯해 우리 성공회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강화 교무구 성직자 모임에서 성공회대학교 역사자료관으로부터 전시할 자료를 받아왔는데, 자료이름과 간단한 내용 등 정리를 저에게 부탁해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초기 선교사들과 교인들이 직접 필사한 자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책 이름은 ≪준주성범(遵主聖範)≫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규범을 따름’이란 뜻을 지닌 책인데 원래 책 이름은 ≪Imitatio Christi≫이고 오늘날은 우리말로 원뜻을 살려서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15세기 독일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수사신부인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가 쓴 책으로서 신·구교를 통틀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수많은 신앙인들이 회심을 하였고, 신앙생활에 많은 길잡이가 된 영성고전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종교개혁 시기 천주교 쇄신과 해외선교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예수회(Society of Jesus)라는 수도회의 창립자이자 스페인 군인출신인 로욜라의 이냐시오(St. Ignatio of Loyola)를 회심으로 이끈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가 이 책을 쓸 무렵 유럽은 여러 방면으로 커다란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흑사병이라고 하는 페스트(pest) 전염으로 엄청난 인구손실이 발생하였습니다. 페스트는 쥐와 벼룩에 있는 페스트균으로 사람에게 전염되어 발생하는 무서운 전염병인데, 1347년 퍼지기 시작해서 불과 4년 만에 유럽인구 1/3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 병은 3~7년 유행하다 잠시 소멸되었다 다시 재유행하면서 약 100년 간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페스트로 인해 일어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하여 군주들과 교회는 제대로 대처를 못함으로 인해 크나큰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대혼란 그리고 각종 부정부패로 중세유럽을 받쳐주던 정신적·물질적 토대가 붕괴되는 시기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에 기대어 한 줄기 희망의 끈이라도 붙잡았으려고 노력하는데 반해 어떤 이들은 방탕하고 타락하여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세상종말이 왔으니 이승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누려보자는 자포자기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부정부패한 당시 교회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교회의 진정한 근거이자 교회를 초월해 계시는 하느님 자체에 대한 갈망과 믿음을 찾으려는 '새로운 헌신운동(Devotio Moderna)'이라는 신심운동이 자발적으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배경 속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신앙과 사회의 위기에 처한 유럽의 신앙인들에게 커다란 영적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19세기 선교사들을 통해 유럽을 넘어 동방에 있는 한반도에 넘어와 구한말과 일제시대 암울한 상황 속에서 힘들어 하던 우리 신앙선조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14세기 유럽의 흑사병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구한말과 일제식민지라는 시대와 장소는 달랐지만,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찾으면서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했던 소망이 같기에 저는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한 낡은 책을 정리하면서 혼란한 시기 신앙과 인생의 목표를 찾고자 갈망했던 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런 의미에서 고난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실천해 가야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1독서는 유다왕국이 멸망 후, 바빌론에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유다민족에게 오랜 옛날 하느님이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주셨듯이, 이국땅에서 포로로 있는 사람들을 고향땅으로 귀향시켜 주실 것을 희망하며 믿으라고 격려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눈이 땅을 적시고 식물의 싹을 틔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하고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듯이, 하느님의 말씀은 그 뜻이 성취되지 않고서는 그냥 하느님께로 오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고 희망하면서 고난을 견디어 내라고 위로하십니다. 제2독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제 막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운 성도들에게 곧 오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희망하면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십니다. 이처럼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와 신약의 사도 바울은 모두 어려운 현실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희망의 약속을 제시하면서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유다민족은 폭압적인 바빌론 왕국 멸망으로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으로 돌아갔으며, 초기교회 성도들은 거대한 로마제국의 핍박 속에서도 기쁜 소식을 힘차게 전해서 종국에는 로마와 전 유럽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말씀이 사람들 마음에 싹을 틔워 열매 맺기까지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말씀이 실현될 수 있었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와서 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겠다. 그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홍수가 나서 큰물이 집으로 들이치더라도 그 집은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맨땅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큰물이 들이치면 그 집은 곧 무너져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 것이다.”(루가 6: 47-49)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와 희망을 품기 시작한 우리는 꾸준한 실천으로 주님의 집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어려움이 오더라도 휩쓸려 가지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들은 그 굳건한 집을 우리마음 안에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형제의 눈 속에 든 티를 보면서도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를 못 보는 것하며, 선한 사람이 선한 마음의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는 비유가 모두 우리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마음을 갈고 닦는 실천을 통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입 밖으로 나오게 되면서(루가 6:45)” 우리 각자와 우리가정, 교회 그리고 우리사회는 언행(言行)이 분열된 곳에서 점차 언행이 일치하는 모습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나와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느님 말씀은 그 결실을 맺으며 우리의 슬픔과 어려움은 점차 기쁨과 행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수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국가와 국가 간 왕래를 어렵게 하고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거리를 두고 만나거나, 화면 속 가상공간에서 안부를 물어보고 대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의술과 공중위생의 발달로 인해 14세기 인구의 1/3이 죽은 흑사병처럼 참혹한 상황은 아니지만, 온 세계가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현재, 어떤 면에서는 과거보다 그 피해와 고통은 훨씬 광범위하고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정부패한 사회부조리는 공정과 정의를 바라고 노력해 온 현대인들에게 더욱 큰 상실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시대는 14~15세기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던 ‘새로운 헌신운동’이 일어났던 유럽의 전환기와도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종교와 사회관습을 그저 따르며 살다가, 흑사병으로 모일 수 없게 되면서 나와 하느님 간의 인격적이고 개별적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그 영적 각성으로 종교개혁과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근대시민사회를 열었던 것처럼, 앞으로 코로나 이후 시대도 과거의 관습과 사고방식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인생의 참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더 진지해질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의 질서와 새로운 미래의 중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인생과 신앙의 길을 잃지 않게 하는 표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바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오래전 유럽에서 그리고 구한말 우리 신앙선조들이 손수 써가면서 마음에 새기려했던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싶은 열망과 그분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고 험난한 인생의 파고를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였다고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의 기도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제게 너무나 감미롭고 사랑스러우신 예수님을 주소서. 다른 모든 피조물을 넘어 당신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해 주소서. 모든 건강과 아름다움을 넘어, 모든 영광과 경의를 넘어, 모든 권력과 위엄을 넘어, 모든 지식과 정확한 사고를 넘어, 모든 부와 재능을 넘어, 모든 기쁨과 환희를 넘어, 모든 명성과 찬양을 넘어, 모든 사랑스러움과 위안을 넘어, 모든 소망과 약속을 넘어, 모든 공로와 욕망을 넘어, 당신이 우리에게 넘치게 주신 모든 은사와 호의를 넘어, 지성이 이해하며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과 기쁨을 넘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사와 천사장을 넘어, 모든 천군천사를 넘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넘어, 당신이 아닌 모든 것을 넘어, 당신 안에 거할 수 있도록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