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그 길(The way) - 다해 성금요일
작성일 : 2022-04-15       클릭 : 282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415 다해 성 금요일

이사 52:13-53:12 / 히브 10:16-25 / 요한 19:16-37

 

 

그 길(The way)

 

우리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밤에 산언덕이나 빌딩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면, 곳곳에 붉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십자가를 걸어 놓기도 하고, 주교 또는 수도자들은 십자가를 목걸이로 달기도 하고, 일반신자들도 십자가를 장신구로 꾸미는 등 십자가는 실로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리 종교의 핵심인 십자가, 그것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성금요일입니다. 매년 성금요일 주님의 십자가를 기념하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과 감정을 가지시나요? 그리고 수난복음을 들으시면서 어떤 상념이 드시나요?

우리 한옥성당에는 여러 성상(聖像)이 있는데, 지성소 입구 위에 있는 성상은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장면 중 일부입니다. 가운데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쪽은 성모 마리아가, 다른 한쪽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서있는 모습입니다. 성당마다 성서와 교회역사에 있는 여러 장면을 그림과 조형물로 배치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한옥성당은 오늘 성금요일 복음에 나오는 이 장면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에 예수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제자가 함께 말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예수님, 당신은 홀로 있지 않습니다. 저희가 함께 있어요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쩌면, 이 한옥성당을 세운 선교사들도 저 멀리 떨어진 낯선 땅, 조선에 와서 생소하게 생긴 한옥양식으로 주님의 성전을 지으며 십자가를 묵상할 때, 다른 복음 장면보다도 오늘 요한복음에 나온 어머니와 제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생애 마지막을 보낸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어떤 영적 위로 내지 심정적 동질감을 느끼셨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구약과 신약의 독서는 예수님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일종의 기도와 통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초대교회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을 보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자연스럽게 이사야 예언서가 노래한 고난 받는 종의 노래를 떠올리며,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준(이사 53:4)”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씻으려고 번제를 바쳐야 하는 종교적 멍에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 기쁜 마음으로 사랑과 좋은 일을 하도록 힘쓰고 …… 서로 격려해서 …… 더욱 열심히 모이도록 하자(히브 10:24-25)”고 권면하십니다.

이처럼 교회는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긴 역사를 거치는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많은 영적통찰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은총으로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가 처한 고난의 길을 극복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십자가 신비와 그 예식에 참여하면서 어떤 기도와 은혜를 받으셨나요? 아마도 매년 다를 것입니다. 때론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기보다는 관례적으로 참여하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성령께서 주시는 통찰과 위로를 받으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강화성당으로 부임해서 첫 성금요일을 지내며 저는 한옥성당에 있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성모마리아, 그리고 사도요한 상()을 보며 기도하다가 문뜩 젊었을 때 즐겨 불렀던 성가가 떠올랐습니다. <그 길>이라는 성가인데, 이 성가는 천주교 임석수 신부님이 1990년 사제서품을 준비하면서 지으신 노래입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 말없는 어린양처럼 걸어가신 길

외로이 걸으신 그 고통의 길 이제 그 길을 내가 걸어가리다

내가 가는 길 십자가의 길 그러나 그 길은 사랑의 길

부르심의 길 그 영광의 길 당신을 따르는 길 생명으로 가는 길

https://youtu.be/y1QQZSlSHM4M4

 

우리들 각자 나름 사연 있는 노래가 있지만, 저에겐 <그 길>이란 노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이 노래를 처음 접했던 것은 신학교 3학년 때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제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수도회에 입회해서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a)>이라는 대피정을 하고 나서입니다. 30일 동안 철저한 침묵과 기도훈련을 하는 이 기간 중, 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 대한 묵상과 관상기도를 하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너무나도 외롭게 느껴졌습니다. 그 때 저는 <그 길>의 가사를 가지고 주님께 외로이 걸으신 그 고통의 길, 이제 그 길을 제가 걸어가겠습니다. 주님, 외로워하지 마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있겠습니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금요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옥성당 십자가상을 바라보며 저는 지난날 젊은 시절 수도원 성당 십자가 앞에서 했던 기도가 생각나면서 다시금 울컥해졌습니다. 20대 젊은이가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어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님, 당신 옆에 함께 있겠다고, 당신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가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살다보니 때론 정말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당신이 걸어가신 그 길이 참으로 녹록치 않네요. 이제 당신께 다시 청합니다. 당신이 저와 함께 있어주세요. 당신이 저와 함께 이 길을 걸어주세요.”

 

그러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으로부터 따스한 위로가 제 마음을 적셨습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위로하려던 젊은이가 세월이 흘러 흰머리가 되면서 사실은 그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오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여러분도 인생을 사시면서 아마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셨을 겁니다. 사도 바울께서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라 6:14)”라고 고백하셨듯이, 이제 우리들도 십자가만이 내 구원의 유일한 증표가 되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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