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소리(다해 부활6주일)
작성일 : 2022-05-22       클릭 : 256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522 다해 부활6주일

사도 16:9-15 / 묵시 21:10, 22-22:5 / 요한 14:23-29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소리

 

 

지난 주 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저는 강촌 요한 피정의 집에서 서울교구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여했습니다. 기획위원회는 교구의 단기 및 중기계획을 세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주교님의 자문기구입니다. 첫날 늦게까지 교회의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의견과 이에 대한 다양한 해결방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늦게 잤는데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복잡한 생각들 때문인지 새벽에 눈이 떠져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실에 가서 주일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오늘 우리가 들은 사도행전과 요한묵시록의 장면을 상상할 때, 예전 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성경말씀과 그 장면이 제게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이것을 함께 나눠볼까 합니다.

첫 번째,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말씀은 유럽 최초의 교회인 필립비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독교 문명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은 사실, 사도 바울이 기도 중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신비로운 영상을 본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환상(fantasy)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사도 16:9)”한 것입니다. 마케도니아는 지금의 그리스 북쪽에 있는 지역인데, 내륙지방은 현재 마케도니아 국가의 영토이고, 해안지역은 그리스에 속해 있습니다. 유럽교회의 첫 열매인 필립비는 마케도니아 해안에 있는 도시이고, 그래서 그리스 영토에 있습니다. 그리고 에게 해를 건너면 소아시아 지방, 즉 지금의 터키 땅입니다. 19976월 제가 UN도시회의에 한국민간단체대표단으로 터키 이스탄불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 도시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에 걸쳐져 있습니다. 이 도시의 중간에 있는 보스포러스 해협에는 긴 다리가 있는데, 강화대교 길이의 약 2배 이상 됩니다. 두 대륙을 이어주는 다리치곤 생각보다 그리 긴 편은 아닙니다. 그 당시 국제회의 기간에 저는 숙소와 행사장을 오고가기 위해 이 다리를 지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든다는 느낌에 신기해했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이 해협은 폭이 좁지만 수심이 매우 깊어서 큰 배가 지나다닐 정도이며, 이 해협과 이어서 펼쳐져 있는 에게 해의 바다는 우리나라 동해보다 훨씬 푸르고 선명합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행전말씀을 관상하면서 바울이 기도 중에 본 푸른 바다와 그 바다를 건너서 와 달라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보여주시고 인도하시는 섭리에 따라 푸른 바다를 건너갔고, 거기서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옷감 장수 리디아의 마음이 열려서 마침내 유럽지역 첫 신자가 되었습니다. 유럽이라는 거대한 지역과 2000년 교회역사가 열리는 그 첫 만남을 상상하면서 저는 성령의 섭리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 오늘 들은 제2독서 묵시록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요한이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시를 보고 썼다고 합니다. 저는 묵시록의 저자 요한이 섬을 거닐며 푸르디푸른 에게 해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던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2016년 중국에서 홀로 귀국했을 때, 석모도에 있는 석포리교회로 발령받아 섬 해안가를 홀로 거닐면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했던 제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바다건너 중국에 남아있던 가족들 생각, 당시 주교님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교단의 앞날에 대한 생각 등 여러 가지 상념으로 주님께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주님, 당신이 예비하신 길이 무엇입니까?”라고 기도 중에 질문하였습니다. 어쩌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를 증언한 탓으로 파트모스섬에 갇혔다(묵시 1:9)”고 말하고 있는 요한도 내적으론 여러 가지 상념과 걱정을 안고 주님께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묵시록에 나오는 7개 교회에 대한 메시지와 최후의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비전은 이러한 요한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영원한 하느님의 도성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요한은 그 도성에는 더 이상 저주받는 일이 하나도 없다(묵시 22:3)”는 예언을 통해, 당시 극심한 박해와 이단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교회와 신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어쩌면 때때로 우리 각자가 살아온 삶의 상황도 사도행전과 묵시록에 등장한 인물들, 즉 해안가에서 환시를 본 사도바울, 유럽에서 첫 복음을 받아들인 리디아, 그리고 교회에 대한 걱정을 안고 섬에서 기도했던 요한의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1893년 강화도에 최초로 설립된 우리교회를 생각할 때, 이 역시 오늘 성경말씀에 나온 것과 같은 주님의 섭리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에서부터 1871년 신미양요를 거쳐 1876년 강화도조약에 이르기까지 강화도는 외세와 우리민족이 충돌하는 치열한 격전의 장소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섬에 살고 있는 우리조상들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시대의 위기를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격랑의 기간 중, 1893년 이 곳 강화에 주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성공회 워너신부님이 갑곶나루터에 집을 매입하여 선교의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양사면 사람 이승환의 어머니가 섬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해안에 있는 배에서 감리교 존스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건입니다. 두 번의 전쟁과 외세와의 불평등조약으로 서양 사람만 보면 돌로 치고 복수하려는 험악한 주민정서 속에서 이것은 실로 대단한 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해에 최초의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갑곶에 세워지고, 이를 훈련시킬 영국교관들이 온 덕분에 성공회 영국신부님이 관청으로부터 근처에 집을 살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곤 하지만, 여전히 민심은 서양인에 대해 적대적인 상황인 점을 고려해 본다면, 초기 선교사들이 선교를 위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을 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양사면 교산에서 당시 인천에서 예수님을 알게 된 이승환의 권유로 주변의 험악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가 용감하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도 오늘 사도행전에 나온 유럽의 첫 교인인 리디아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전쟁으로 상처 난 땅 강화에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1900년 지금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이 한옥성당이 축성됨으로서 서양색깔의 교회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것만 고집하는 폐쇄적인 교회도 아닌,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 화해하고 융합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기도 중에 바다 건너에서 어서 와 달라는 소리를 듣고 필립비 도시에 유럽의 첫 교회를 세웠듯이, 또한 묵시록의 저자 요한이 기도 중에 아름다운 하느님의 성전을 보았듯이, 우리교회 역시 바다와 강을 건너 복음의 씨앗을 심고, 아름다운 천주성전(天主聖殿)’을 세웠습니다. 그러기에 강화선교의 역사, 우리교회의 선교역사는 사도행전과 요한묵시록에서 인도하신 성령의 손길과 똑같은 하느님의 영이 움직였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교회 역사를 감히 강화 사도행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교우 여러분!

내년 강화선교 130주년, 우리교회 설립 130주년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러한 큰 선물을 주셨는지 다시 한 번 인식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유럽의 맏아들 필립비교회처럼 우리교회도 강화의 맏아들이자 동시에 어머니 교회로서 신앙의 유산을 보존하고 후손들에게 잘 전달해 줄 수 있도록 기도하고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성지화 사업은 주님이 주신 신앙의 선물을 알리고 기념하여 우리교회와 우리교단 그리고 나아가 한국기독교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귀중한 선교사역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4:26)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의지하기에 강화선교130주년을 준비하는 우리의 힘만으로 부족하지만, 협조자 성령이 반드시 인도해 주셔서 선교비전을 실현시켜 주실 것을 믿고 희망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손길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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