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래 신부 칼럼  
 

승천: 새로운 사명의 서광(다해 승천대축일)
작성일 : 2022-05-29       클릭 : 251     추천 : 0

작성자 베드로  

220529 다해 승천대축일

사도 1:1-11 / 에페 1:15-23 / 루가 24:44-53

 

 

 

승천: 새로운 사명의 서광(曙光)

 

 

지난 주일예배 때 저와 김 신부님 사제서품 기념일을 맞아 교우 분들께서 함께 축하해주시고 귀한 선물도 주셔서 기쁘고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그러면서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각 사람들마다 인생의 분기점이 있듯이, 저에게는 사제서품이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1학년 때부터 사제성소를 꿈꾸기 시작해서 사제서품을 받기까지 장장 26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된 후, 올해까지 14년이 됩니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제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간석교회에서 첫 미사를 집전했던 때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면병과 포도주가 제 손을 거쳐 주님의 거룩한 몸과 피로 축성되는 신비로운 예식을 거행하고, 그 축성된 성체와 보혈을 신자 분들에게 나눠주면서 저는 그 거룩함 앞에 깊은 감동과 더불어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선배신부님이 해주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제가 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분은 또 이런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성물을 축성하고, 심지어 구마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자만하거나 착각하지 마라. 그것은 너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인 것이다. 이것을 망각하면 다른 사람은 구원받을지 모르지만, 너는 망한다.”

사제가 되기 전까지, 주님은 부족한 저를 좋은 사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교육을 시켜주셨고, 저는 그때마다 열심히 배웠습니다. 사제가 되기 전까지 그 초점이 제 개인에 맞춰졌다면, 사제가 된 후로는 그 초점을 제 개인보다는 주님과 그분이 세우신 교회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에게 있어서 그 분기점은 사제서품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승천을 묵상하며 이 세상에서 살아오신 예수님의 삶을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 성탄절 설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신학용어로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도 하고 강생(Descent)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강생(降生)이란 말은 하늘로 오르신 승천(Ascension)이란 말과 완벽히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탄으로부터 시작한 예수님의 지상사명은 승천을 통해 하나의 마침표를 찍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 전례풍습에서는 부활초를 승천대축일까지만 제대 옆에 켜놓았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제 하늘로 올라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정된 전례에선 부활초를 다음 주 성령강림대축일까지 켜놓습니다. 그것은 비록 승천으로 예수님의 지상사명은 다했지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서 교회를 탄생시키고 이를 통해 새로운 구원사명을 열어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설교서두에서 사제서품 이야기를 통해 전하려고 했던 하나의 일이 매듭을 짓는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이 시작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제2독서 에페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께서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교회를 이루시고 세상 마칠 때까지 어떠한 모습으로 구원사명을 계속해 가실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에페 1:22-23)”

지상에서 예수님은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등. 주로 활동의 초점이 예수님 한분의 구원활동에 집중되었습니다. 반면에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은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어 우주적 차원의 존재가 되셔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 친히 머리가 되시어 진두지휘하십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우리들과 하늘에 계신 당신을 이어 줄 협조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와 늘 함께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의 활동은 지상에서 물리적, 시간적 제약을 벗어나서 우리 마음속에서부터 온 세계 곳곳까지 아니 계신데 없게 되었습니다. 존재론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 열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승천은 예수님의 지상사명을 마무리한다는 차원도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교회를 통해서 우리인간들과 함께 하신다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예수님 승천을 다 함께 기뻐하고 경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를 보면, 제자들은 예수승천이 가져오는 변화의 의미를 아직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곧 하늘로 오르실 예수님께 주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사도 1:6)”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절 융성했던 국가가 다시 세워지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시야와 상상력은 자신들이 배우고 경험한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면에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었을 것입니다. 필경 그 자리에서 예수승천의 의미를 바로 깨닫기에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하늘에 오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의 인도로 유다인과 이방인들 그리고 이스라엘을 넘어 기타 여러 지역으로 복음이 퍼져나감에 따라 그들은 서서히 그 신비스런 사건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그 자리에서 승천사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하느님 구원활동은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마치 새벽 빛(曙光)’이 비추듯이 말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각자의 인생을 돌아볼 때 전환이 되는 분기점들이 있습니다.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일, 자녀가 태어나서 부모가 되는 일, 직업을 갖게 돼서 사회생활을 하는 일, 그리고 거기서 진급되어 책임과 권한이 변동되는 일 등등. 실로 우리는 분기점을 전후로 삶의 형태, 생각, 자세 등이 변화합니다. 우리 신앙과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1고린 13:11)”

사도 바울의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 각자가 걸어온 과거를 한번 회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참 많은 변화를 겪었구나하고 느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 온 삶을 돌아볼 때,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입니다. 변화는 일반적으로 좋다고 하지만, 모든 변화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예를 들자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이든 변하지 말아야 할 황금률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 안에 변화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심리학에서 어른아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들과 같은 미성숙한 부분이 있다든지, 아니면 어렸을 때 받은 마음의 상처 등이 해결되지 않아서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 가지 억압이나 왜곡된 모습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변화하지 않는 것이 행여나 그런 모습이라면 하느님의 은총에 비추어서 나의 내면을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치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변화의 방향에 대한 점검입니다. 내가 변화한 것 그리고 변화하려는 방향이 나를 한 단계 성숙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퇴행인지 식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승천을 기념을 하며, 하느님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당신 품으로 올리실 거라는 것을 믿고, 희망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내가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듯이, 꾸준히 덕을 닦고 신앙을 성숙시켜 나갑시다.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불러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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